가면라이더 오즈 21화입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 진전해 가면서 또다른 의문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메인 스트림이 점점 진행해 간다는 느낌입니다. 다만 오즈가 나무의 잎과 가지들은 열심히 짚어가면서도, 좀처럼 그 줄기로 향하는 걸음이 느긋한지라, 이대로 정말 진실이 밝혀지는 날이 곧 오기는 할까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오즈는 정말 캐릭터간의 관계성을 차분하게, 천천히 그리고 시간을 들여 구축해 나가고 있거든요. 마치 쿠스쿠스의 매번 바뀌는 인테리어처럼, 오즈의 이야기는 설정되어 있는 틀 안에서 옷을 여러가지로 바꾸어 입으며 보여주는 극 같습니다. 옴니버스 스타일 같다고나 할까요. 아무래도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옆으로 가지치는 이야기들이 눈에 띄게 들어와 그런 느낌이 드나 봅니다.
아무튼, 가보겠습니다. 가면라이더 오즈. 이하의 글은 가면라이더 오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본 작품을 이미 시청하신 분들만 읽어주시길 권장드립니다.
이번 쿠스쿠스의 메인테마는 발렌타인입니다. 식구가 늘어 우리 사장님도 일손을 많이 덜 수 있을 것입니다. 보통 발렌타인 에피소드라 하면 좀 더 사랑과 연애의 전쟁에 유사한 내용이 나오겠구나, 기대하게 되지 않습니까. 특촬에서 크리스마스가 갖는 특별한 의미처럼 말이에요. 적어도 괴인이 로맨틱 빔을 쏘거나 하는걸 기대하게 된단 말이죠. 지금까지 오즈가 주제로 삼아온 욕망들은 어떻게 보면 7대 죄악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정욕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에이지가 초콜릿을 열심히 만들 때까지만 해도 약간 그런 에피소드를 기대했습니다. 물론 지난화 예고편을 봤기 때문에 그딴 기대는 다 제 망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긴 했죠.
그런데 이번 에피소드 주인공의 심각함이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그, 발렌타인을 굳이 고른 이유는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함이 발렌타인으로 중화되기 바래서인가요? 사랑과 평화를 위해? 아무튼간 이번 에피소드의 주요 인물은 정의의 수호자가 되고 싶은 노량진 장수생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에피소드에서 잡은 욕망의 키워드가 매우 맘에 듭니다. 이전 에피소드들에서 숨어 있는 욕망과 자존심에 대해서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갔었죠. 욕망이 단순하게 한가지 층위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구성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욕망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갔을 때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수도없이 반복해서 다루어 왔다고 봅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그런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모두 모아놓은 정리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시리즈의 주제의식이기도 한 정의에 대해서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이지도, 고토도 나름대로의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같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오늘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장수생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그의 야미는 조금 독특한 양상을 띕니다. 지금까지의 야미들이 일차원적인 방식으로 자기 욕망을 충족해 왔다면 (먹고싶다 -> 마구 먹는다 / 사고싶다 -> 마구 산다 / 인정받고 싶다 -> 남의 업적을 빼앗는다) 그의 야미는 우선 남에게 도움이 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욕망이란 잘 다스리지 않으면 지멋대로 날뛰는 불처럼 묘사되어 왔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욕망은 꽤 신선합니다.
지금까지 노량진 장수생 친구의 인생은 제법 스트레스가 가득 쌓여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방법이 아닌 물리적인 방법으로서의 정의구현 펀치가 얼마나 사이다였겠어요. 그러니 그는 잠시 수능 시험을 잊고 쾌락에 젖어 피시방으로 달려가는 고등학생마냥 신이 나고 말았습니다.
거듭된 논문디펜스 실패로 세상에 환멸을 느끼게 된 장수생 친구에게 물리적인 힘이 주어지자 자기가 고담시티의 배트맨이라도 되는 것 마냥 마구 휘젓고 다니는 것 좀 보세요. 안타깝게도 이곳은 고담 시티가 아니며 자네도 배트맨이 아니랍니다. 솔직히 홍대거리도 이정도로 시끄럽긴 하잖아요 이정도는 불금을 보내는 버스킹 밴드 크루 정도로 보고 넘어가줄 수 없는 걸까요? 아무래도 눈에 뵈는게 없어진 듯한 노량진 장수생 씨
하지만 정말 공정한 정의란 존재할까요? 고담 시티의 악당들도 나름대로 자기가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의가 옳은지 아닌지 정하는 건 결국 자신이고, 비교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잣대는 없습니다. 그러니 점점 자신이 옳다는 그 욕망에 잠식될수록 휘둘리게 될 겁니다. 노량진 친구는 지금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인지 자신이 전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겁니다.
그리고 고토 군도, 그런 환상에 한때 사로잡혀 있던 친구입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조금 복잡한데요, 정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고토씨, 다테씨 그리고 에이지 세 인물이 엮여 들어가고 있습니다. 야미가 된 노량진 친구와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운 것은 고토 씨이기 때문에 이 에피소드의 인물 관계 구조는 아무래도
다테 씨
노량진 장수생 - 고토 씨
에이지
약간 이런 구도로 만들어지는 것 같네요.
다테 씨는 현재 코우가미 사장에게 고용되어 마키와 함께 일하는 사이입니다만, 근본적으로 그의 스탠스는 코우가미 사와 함께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테씨는 에이지와 닮아 있는 느낌이 납니다. 그러나 그가 에이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테씨는 철저한 속물이거든요. 다만, 그는 자기가 그런 속물이라는 점을 긍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돈을 원하고 1억엔을 벌기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무엇이든 뛰어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마키와 일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들을 거침없이 해내고 있죠.
반대로 에이지는 속물은 아닙니다. 그는 좀더, 현실적인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느낌이 납니다. 에이지는 이미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루고 싶은 그 어떤 것을 위해서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달려야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가 원하는 것은 제가 생각하는것보다 더 커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요? 전에도 언급했지만 에이지는 이미 어느정도 완성되어 있는 캐릭터입니다. 이 완성형 캐릭터가 대체 어떤 계기로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왠지 그게 그리드와 엮이면서 생기게 될 것 같습니다.
신이 아닌 이상 누구의 정의도 가장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거죠. 잘못된 정의는 언제나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그 광기의 끝을 에이지는 이미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명분과 정의의 이름으로, 나락의 밑바닥까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관계가 진전되나 싶었지만 여전히 손발이 안맞는 친구들
그리고 흥미로운 키워드가 하나 더 나오는데요, 바로 욕망의 크기입니다. 작은 욕망으로는 야미가 만들어질 수 없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 친구가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하기 전에는 야미가 만들어질 것처럼 연출된 게 굉장히 신경쓰입니다. 야미로 부풀어오르기 적당한 욕망의 크기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요? 그 욕망의 크기는 숙주인 당사자가 자각하지 않는다면 어디로든 잘못 나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지... 우리는 이미 앞선 에피소드에서 진짜 욕망을 감추었던 사례를 봤으니까요.
저스트댄스를 추는 오즈와 야미 두둠칫
앙크는 버스도 어떻게든 이용하려는 것 같습니다. 오즈는 항상 매화마다 꽉 차있고 탄탄하네요. 새롭게 등장한 키워드와 함께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계속해서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