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헤이세이 파이널을 보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아직도 가이무, 고스트, 오즈, 포제를 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미친듯이 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블레이드를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지난번 감상글이 유난히 화수를 많이 묶은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나 최대한 스포를 안 하고 감상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블레이드 29, 30화는 그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블레이드 29, 30화의 에피소드는 마크 트웨인의 그 소설에서 이야기 구조를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미디어 매체에서 써먹은 유명한 소재지요. 이 이야기 구조가 이번 화에서 큰 핵심을 꿰뚫고 있기에 이 에피소드를 따로 떼어내서 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래 내용은 블레이드 29, 30화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므로 해당 에피소드를 이미 보신 분만 읽어주세요.
잔뜩 깨진 거울의 거리를 걸어가는 무츠키. 거울이 자신을 비춘다는 메타포를 생각하면 지금 내면의 무츠키는 저렇게 산산조각나 잠들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깨진 거울 속의 나약한 자신은 언제쯤 정신을 차리게 될까요. 무츠키의 걸음이 불안해 보입니다. 벨트 하나 잘못 주워 인생이 고난의 연속인 무츠키. 가면라이더라는 것은 사람을 부지불식간에 불행의 수렁으로 이끌고 내려가는군요. 그것은 힘이 가진 필연적인 속성인 걸까요.
그리고 29화의 새로운 언데드씨. 카리스에게 나타나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29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맛있는 타코야끼를 굽고 있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음식중 하나가 타코야끼입니다. 이런 사족은 됐고 사실 제가 블레이드 보는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풍문 중 하나에 타코야끼라는 키워드가 있었기 때문에 드디어 이 타코야끼의 정체를 알게 되는구나 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일이람
이번 에피소드는 타코야키와 붕어빵의 대립을 다룬 나름 개그 에피소드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을 개그 에피소드라고 봐야 할까요. 29, 30화를 본 저는 이 에피소드를 단순한 개그 에피, 쉬어가는 에피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개그는 그저 이 이야기의 무거움을 받아들이기 힘든 아이들을 위한 슈가파우더같은 존재입니다. 웃음 속에는 진심이 숨어있기 마련이니까요. 블레이드는 자신들이 이제부터 심각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암시를 이 에피소드로 팍팍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블레이드의 이야기 구조는 트럼프 카드의 순서에 맞추어 진행되어 왔습니다. 각각의 라이더의 힘의 근원을 상징하는 A(에이스) 카드가 있고, 1~10까지의 숫자 언데드 카드들을 봉인하는 것으로 초반 이야기를 진행한 것이 20-21화까지의 흐름입니다. 21화 이후부터는 K,Q,J의 상위 카드들을 공략하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제일 끝 카드인 조커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29-30화 에피소드는 이 흐름의 중요한 전환 포인트가 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아이카와 하지메입니다. 지금까지 하지메는 자신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해 왔습니다. 그 부분은 이전 화에서 꾸준히 하지메의 진짜 모습에 대해 의문을 던져오면서 제시되었습니다. 하지메는 이전에 무츠키에게 자신을 언데드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존재라고 했습니다. 또 켄자키에게 보여졌듯 다른 언데드의 카드를 사용해서 그 언데드의 모습이 되기도 하구요. 하지메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도 카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고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자신으로서의 정체성도 그만큼 여러가지로 나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물며 우리도 모국어를 쓸 때나 각각의 외국어를 쓸 때 성격이 조금씩 바뀐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지메는 아예 여러가지 모습이 될 수 있는것입니다.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자신과 똑 닮은 타코야끼 명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현재에 대해서 피로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는 두 사람은 전혀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의 역할을 바꾸기로 합니다. 이렇게 하지메에게는 타코야끼 명인이라는 새로운 모습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역할은 왠 알지 못하는 누군가(그러나 얼굴을 똑같이 생긴)에게 던져버린 채로 말입니다.
이 플롯은 아주 새삼스럽지만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가 가지고 있는 플롯입니다. 생일이 같고 모습이 같은 거지와 왕자가 각자의 역할을 바꾸어 생활해보는 이야기. 역할을 바꿈으로써 그들은 자신이 볼 수 없었던 세계를 체험함과 동시에, 자신이 누구로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확실히 하게 됩니다. 여태까지 권태로움 혹은 피로감을 느꼈던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 한 걸음 멀어짐으로, 도리어 명확하게 자신에 대해서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외국어를 공부하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이 대사는 29-30화의 전체 에피소드에서 가장 크게 던져지는 물음입니다. 네가 내가 되면, 나는 누가 되어야 하지? 너는 대체 누구야?
언데드들은 그를 조커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조커를 찾으며 해맑게 웃는 분이세요. 아주 큰소리로 웃고계신데 길거리를 저러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좋은 사회입니다. 아니 사실 건드리면 진짜 큰일날것같아서 피해다니는 것 같아요.
인생을 바꾸어 신난 타코야키 명인 씨. 이 다음부터는 계속 두 사람의 상황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우당탕탕 즐거운 켄자키네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고 있습니다.
평범하게 던져지는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는 하지메 군이 정말 예쁩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의 생활 속에서 자신을 발견해가고 있는 하지메입니다. 어쨌든 남국의 옷을 입고 하와이에 누워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모습으로 항상 인생으로 심각하게 살고 있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하지메는 자기 인생을 좀 더 즐길 필요가 있는데 말이지요. 초반에 나왔던 메두사 언데드의 발언과 종합해보면 이 장면은 퍽 슬픈 장면입니다. '네가 이기면, 세상이 멸망한다!' 이 무슨 저주나 다름없는 말인가요. 왜 세상에는 이런 존재들이 살아가고 관계를 맺고 감정을 갖는 것입니까. 이 친구는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미움받고, 노려져서,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않는 고양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세계 속에서 점점 감정을 배워가고 있는 하지메가 자신은 사실 자신에게 알수 없는 따뜻함을 준 사람들을 전부 지워버리는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걸 알아버리는 순간이예요. 이 장면은 그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특촬은 항상 눈에 후추가루를 뿌리기 전에 설탕물을 먹여주는군요. 고맙기도 하지
그와중에 붕어꼬리같이 생긴 뒷머리가 신경쓰입니다.
한편 그런 그의 운명을 대신 짊어지기로 한 타코야끼 명인은 대보름 사자탈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혼신의 연기 정말 배우분 힘쓰셨겠어요.
자신이 짊어지기로 한 '하지메' 가 대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타코야끼 명인은 하지메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계속해서 보여집니다. 한마디로 캐해석이 안 된다 이말씀이예요. 하지만 하지메가 뒤집어쓴 타코야끼 명인씨는 정체성이 확실하지요. 하지메가 몇마디 하지 않아도 주변인들이 그를 타코야끼 명인으로 받들어 줍니다. 그러나 타코야끼 명인 씨가 생각하는 하지메는 도통 알 수 없고 영 딴판인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것은 주변인들이나 하지메 본인이 그에게 자신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은 것도 있겠으나, 역으로 생각해 보면 하지메에 대한 정보가 그만큼 적다는 것도 의미하고 또한 하지메가 그만큼 평범함이라는 범주에서 멀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구구절절하게 슬프고 안타깝네요. 그가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그 모든 장면이(비록 내용물은 타코야끼명인이지만) 그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도 씁쓸한 일입니다. 고양이가 없는 세계의 유일한 고양이는 특별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왕자와 거지가 그랬듯이, 결국은 다른 사람이 됨으로서 자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 두 사람입니다. 아니 한 사람과 언데드입니다. 아니 한 사람과 하지메...?
자신의 운명을 걷기로 한 하지메의 앞날은 여전히 아프고 괴롭겠지만 그의 웃음을 찾아줄 사람들이 계속해서 있다면 그 역시도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사족을 덧붙이자면 이번화를 보고 느낀건데 아마네는 평범한 하지메보다 고양이로서의 하지메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대로의 하지메가 좋다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줘서 다행이에요. 아마네 정말 보통멘탈 아닌것같고 네 그렇습니다... 제가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블레이드의 흐름 와중에도 아마네의 일편단심만은 흔들리지 않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블레이드 30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