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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라이더/가면라이더 제로원

[스포] 가면라이더 제로원 4화 감상 정리

이제사 리뷰글을 쓸만한 짬이 났습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3화 리뷰글을 써놓은지가 얼마 안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제로원이 진도를 막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진도 빠지기 전에 얼른 4화 감상글을 써두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가면라이더 드라마가 2화 1에피소드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요, (제가 본 걸 기준으로 하면 디케이드, 오즈, 드라이브, 에그제이드 등... 많습니다.) 제로원은 1화에 1에피소드가 끝나는 형식으로 굉장히 스토리 전개가 타이트한 편입니다. 이러한 전개의 이유는 제로원이 직업을 테마로 하는만큼 다양한 각본가들의 시각으로 직업의 현장을 그려갔으면 하는 의도도 담겨 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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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휴머기어, 안나입니다

그러다보니, 아직 초반부에 지나지 않는데도 작품 내에서 등장한 휴머기어들의 직업들의 종류가 상당합니다. 기자, 비서, 개그맨, 미용사, 보안요원, 택배기사, 스시 요리사... 정말 다양했네요. 제로원 4화에서 조명하는 직업은 바로 버스 관광 가이드입니다. 

휴머기어 운용 도시로 개발되었지만 공장 폭발 사고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직업과 함께 본 작품에서 가장 핵심을 쥐고 있는 데이브레이크 타운에 대해서 파헤쳐 나가는데요. 이 메인 서사와 함께 제로원은 계속해서 인간과 휴머기어를 대조시켜나가면서 다양한 의문점을 던지는 구조로 에피소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대조점의 중심에 있는 것이 지난번 포스트에도 잠깐 언급했듯이 바로 인간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추상적인 개념들입니다. 제로원 1화에서는 웃음과 꿈을 중심으로, 3화에서는 마음이라는 키워드가 제시되어,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 휴머기어가 받아들이는 것이 대비되는 모습이 계속해서 비추어졌었죠.

휴머기어를 사이에 두고 "기억에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인간의 모습이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이 흥미로운 대비점은 4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유지되지만, 보다 더욱 강화되어 나타납니다. 데이브레이크 사건의 피해자들, 그리고 히덴 인텔리전스의 부사장이 각각 휴머기어 관광 가이드 안나와 대담하는 장면은, 제가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제로원이 그려온 인간과 휴머기어간의 대비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장면이라고 감히 말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제로원 4화에서는 우리가 인간에게만 있는 것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오히려 휴머기어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는 걸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제로원은 휴머기어에게 자아(혹은 감정)가 싹트는 것을 일종의 '특이점'으로 보고, 이 특이점을 발현한 휴머기어가 마기어가 되어 주인공 일행과 대립하는 구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사실 자아가 싹튼 휴머기어는 휴머기어에 있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죠. 물론 이 자아라는 것의 기준은 또 대체 무엇인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만, 사실 3화까지의 제로원은 이러한 구도 덕분에 휴머기어에게 감정이나 웃음 같은 추상적인 개념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마음은 데이터화 할 수 없다는 대사나, 감정의 맥락을 읽어내지 못하는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로원 4화에서는 이 생각을 전환해, "휴머기어가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개념에 해당하는 행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라는 방향을 보여줍니다. 사실 정의감, 성실함, 사랑, 감정 등등,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은 인간이 어떠한 현상을 그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붙여진 라벨들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보기에 휴머기어의 어떤 행동이 정의롭게 받아들여진다면, 그 휴머기어는 정의감이란 개념은 하나도 모르더라도 정의감을 가지고 행동한 휴머기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애초에 휴머기어는 정해진 프로토콜에 저항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정해진 프로토콜을 따르도록 만들어진 것이 휴머기어기도 하구요) 지금 이 이야기는 그래서 인간이나 휴머기어 어느 한쪽이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요령을 피울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해야만 한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으니까", 혹은 "숭고하니까" 와 같이 인간이 상위가치로 생각하는 규범들은 굉장히 강제성이 적으며, 사람에 따라서 다른 가치와 저울질해 완전히 무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히덴 인텔리전스사의 대담에서 부사장이 진실을 알리는 것과 히덴 인텔리전스의 존속 중에서 히덴 인텔리전스를 생각해 모르쇠로 굴었던 모습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때로는 타협 없이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가는 휴머기어가 더 인간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휴머기어는, 있는 것은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말하죠. 인간이 어떤 데이터를 주느냐에 따라 휴머기어는 입력된 사실만을 말합니다. 또한 자신의 해야할 일을 다른 가치와 저울질 하지도 않습니다. 미용사 휴머기어가 갑자기 자신의 꿈을 찾는다며 미술을 시작하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광 가이드 휴머기어가 자신의 프로토콜인 '이 장소의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것'을 그대로 실행한 결과, 다른 인간들에게 '사명감', '정의로움'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휴머기어 본인은 그 감정을 전혀 몰랐지만요) 그 결과 인간들이 은연중에 생각하는 감정이나 형이상학적인 가치들이 실은 아주 자의적이고 가변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흔하게 발생하는 일입니다. 실제로는 아무 생각 없이 한 일에 대해서 인간들은 정의감이라던가, 사명감 같은 라벨링을 붙이고 굉장히 소중하게, 때로는 위대하게 다룹니다. 하지만 정말로 진짜 '사실'만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거기에는 이런 거창한 이름들은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혹은 실제와는 달리 완전히 다른 사실로 왜곡해 버리는 일도 있고요. 이는 제로원 4화에서 사명감과 함께 다루고 있었던 "이 땅의 올바른 과거를 비추는 방식"과 연결되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메세지도 은연중에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멸망신뢰넷 쪽 서사도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려는 사람들에게 나타난 멸망신뢰넷은. 수수께끼의 라이더로서 새로운 갈등의 국면을 제시해 줬는데요. 이렇게 빠른 전개속도에도 불구하고 매주마다 섬세하게 인공지능과 인간을 그려가고 있는 것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5화부터는 새로운 각본가가 투입되기 때문에 이러한 섬세한 부분을 잘 캐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됩니다만(사실 이미 5화를 본 입장에서 살짝 언급하자면 우려가 사실이 되긴 했습니다) 어시스턴트 휴머기어 또한 상당히 흥미로운 소재이기 때문에 다음화도 기대가 됩니다. 

그러나 보안해제는 해주지 않았다

아 물론 제로원 4화에는 이 에임즈의 두 라이더 간 관계도 재미있게 그려지기 때문에,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은 에피소드입니다. 두번, 세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