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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라이더/가면라이더 제로원

[스포] 가면라이더 제로원 3화 감상 정리

일주일이 너무 빨리 지나가네요. 적당히 하루이틀 뒤에 머릿속 정리도 좀 하고 감상 써야지 했는데 벌써 이렇게 4화 방영일까지 왔습니다. 지난번 이야기였던 제로원 2화는 주인공인 히덴 아루토와 에임즈의 이사무 둘을 대비해서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는데요. 제로원 3화는 에임즈의 다른 한 사람인 야이바 유아와 아루토가 대비되어 나오는 에피소드입니다. 가면라이더 발키리의 첫 데뷔인 셈입니다. 굉장히 멋진 캐릭터이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래 글은 가면라이더 제로원의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아직 해당 작품을 시청하지 않으신 분들은 열람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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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휴머기어 니기로(스시를 쥐다 할때의 니기로입니다)씨

제로원의 테마인 인공지능은 직업물이라는 컨셉을 통해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향성은 먼 미래에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인간의 다양한 직업 현장을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측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덕분에 1화에서부터 계속해서 다양한 직업 현장 속의 휴머기어들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제로원의 경우, 택배기사나 보안 요원같이 비교적 쉽게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은 직업들 뿐 아니라, 요리사나 개그맨, 기자 같이 아직까지는 인간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되는 직업들에도 휴머기어가 침투해 있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3화는 바로 이런 영역의 직업을 에피소드의 메인 소재로 가져오고 있는데요, 바로 스시 요리사(그것도 장인이라고 불리우는) 입니다. 

보수적이고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옛 요리인의 상을 똑 닮았습니다.

요리는 인간의 미각을 자극하는 것이며, '맛'이나 기호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주관적인 요소가 상당히 작용합니다. 하지만 제로원의 세계는 그 조차도 휴머기어가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하죠. 스시 요리사 휴머기어인 니기로는 주문자의 방대한 빅 데이터를 분석해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일품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장인은 그 일품에 '마음'이 없다는 이유로 휴머기어의 요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로봇이 만든 요리에는 인간의 마음이나, 손맛이 없다는 것입니다. 

휴머기어를 어떻게 쓸것이냐는 인간이 하기 나름이라는 유아

바로 이러한 상황을 중심으로 이번 에피소드의 아루토와 에임즈의 유아는 다른 위치에 섭니다. 아루토는 요리사 휴머기어를 인간과 동등하게 바라보려는 반면, 야이바 유아는 휴머기어가 발전된 미래를 위한 기술임을 전적으로 긍정하면서도 아루토처럼 개별 개체를 친구나 파트너, 가족이라는 라벨링을 붙여 특별하게 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유아의 시각은 어디까지나 휴머기어는 인간을 위한 편리한 도구이므로, 잘못되었다면 고쳐 쓰면 되는 것입니다. 에피소드 초반에서 아루토와 함께 휴머기어의 좋은 측면을 긍정했던 유아가 감염되어버린 니기로를 제압하는 시점에서는 냉정하게 "한가지 알려주지. 휴머기어는 백업 데이터만 있으면 다시 복원할 수 있어." 라며 딱 자르는 모습은 이번 에피소드의 백미이자, 두 사람이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 단호한 대비 장면은 이번 에피소드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까지 아루토의 휴머기어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는 휴머기어를 감정이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편린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는데 그는 로봇을 진심으로 웃게 하고 싶어 했죠. 그는 휴머기어와 인간을 같은 선상에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즈가 말했듯이 휴머기어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즈의 마음은 데이터화 할 수 없습니다, 라는 대사가 3화라는 제법 이른 시점에 튀어나온 것을 보면 이 작품은 로봇에게도 마음이 있는가? 라는 인공지능물의 유구한 의문지점에 대한 스탠스를 초반부터 확실하게 잡고 넘어가고 싶은 것 같습니다.

반어법은 아직 인공지능에게 먼 이야기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질문에 대한 제로원의 대답은 '휴머기어에게는 마음이 없다' 로 보입니다. 아루토가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니기로는 스시 장인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보여지는 것을 그대로 이해하는 이즈는 장인이 니기로를 혼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맥락을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인간과 휴머기어는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로원 3화는 둘 간의 좁혀질 수 없는 차이를 강조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휴머기어는 추상적인 개념을 정의하거나 판단할 수 없지만(감정, 마음 등...) 그 휴머기어를 대하는 인간은 바뀔 수 있습니다. 로봇이라는 이유로 니기로를 거부했던 장인은 휴머기어의 말을 듣고 그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었습니다. 2화의 마모루도, 3화의 니기로도 다시 초기상태로 돌아갔지만 인간은 이전의 그들과의 기억을 통해 지금의 그들을 새롭게 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휴머기어에게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휴머기어가 어떤 경로로든 인간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겠지요. 인간의 뇌는 점 세개만 삼각형으로 찍어놓아도 얼굴처럼 볼 정도로, 인간과 닮은 것에 정을 주기 때문이니까요. 움직이지 않고 존재하는 무기물에도 마음이 움직이곤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제로원은 계속해서 인간에게 어떻게? 라는 의문점을 던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보다 우리는 다르다는 점을 빠르게 인정하고, 그렇다면 인간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틀을 잡아나가고 있죠. 지금까지 작품이 다루고 있는 키워드들이 추상적인 관념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의문 제시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이러한 인간들 전체와 대립하고 있는 멸망신뢰넷과 데이브레이크 타운의 숨겨진 과거들에 얽힌 메인 스트림도 천천히 움직이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꽉 차있고 한 에피소드마다 정보량이 상당하네요.

벌써부터 수상한 집단이 한둘이 아닙니다

특히나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에임즈의 수수께끼같은 남자가 제시되면서, 에임즈 역시 마냥 정부직속의 특무기관만은 아니라는 느낌을 팍팍 주었습니다. 게다가 '방주를 복원한다' 등, 과거와 얽힌 키워드들도 나왔구요. 프로그라이즈 키가 현재 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데이터를 기반으로 불러내고 있는 것이라는 정보와, 이전에 호로비가 언급했던 데이터 수집이 필요하다는 발언 등을 감안했을때 제로원은 이미 한번 과거에 비슷한 계획이 진행된 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마구 듭니다. 

이 감상글을 쓰는 시점에 벌써 4화가 나와버려서, 보고 왔는데요. 다음화부터는 이렇게 쌓은 메인 인물간의 기본배경이 본격적으로 엑셀을 밟고 나아가는 스타팅 지점이 되고 있습니다. 4화 감상글도 천천히 써나갈 테지만 지금까지 풀린 세 라이더의 시각이 앞으로 어떻게 얽히며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너무 기대됩니다. 매 화마다 펼쳐지는 신선한 액션 연출과 이펙트들, 중간중간 깨알같이 전투신에 감초가 되어주고 있는 개그 포인트들도 가면라이더 제로원을 즐길 수 있는 재미 요소 중 하나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쯤 이 작품을 봐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