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감상글은 이걸로 마지막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드라이브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우적대고 있죠 드라이브 4쿨은 지금까지 드라이브가 직간접적으로 노출시켜오고 있던 주제의식에 대한 해답편이나 마찬가지이기때문에 정말 이것저것 언급할 부분이 많습니다. 어떻게 정리하는게 좋을까 조금 고민이 되었었는데요. 작품 전반적으로 말하려는 드라이브의 인간관에대해서 조금 장황하나마 나름대로 정리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래 글은 가면라이더 드라이브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읽으시기 전에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가면라이더 드라이브는 3쿨을 지나면서 '싸워야 할 진정한 악'에 대해 큰 전환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설정되어있는 적은 로이뮤드였습니다. 이 친구는 기계생명체이고 인간을 위협하는 글로벌 프리징을 일으켰거든요. 이 과거를 기반으로 로봇들이 인간에 대해서 일으킨 전쟁을 제압해 나가는 것이, 1-2쿨동안 드라이브가 표면적으로 전개해나갔던 주제였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한 SF적인 서사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로도 좀 만들어졌던 유구한 클리셰. 인간의 삶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을 개발했더니, 그 인공지능이 역으로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인간은 그것에 맞서싸우며 인간성에 대해 다시 자각한다는 그런 이야기들이죠.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계속 반복됩니다. 이것은 제가 감상글 초기부터 계속 언급했었던 거지만, 로이뮤드는 인간을 통째로 복사해서 따라할 수 있다는 설정이 붙어있습니다. 인간의 행동양식, 신체적 특징, 이런 걸 다 복사해서 누구도 모르게 그 사람인 척 할수도 있고 그걸 이용해서 인간 사회속에 아무도 모르게 숨어들 수도 있습니다. 4쿨에서는 그렇게 감쪽같이 원본을 대체해서 숨어살고있던 로이뮤드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들 원래 모델이 되었던 인간의 욕망에 반응해, 그 욕망을 여러가지 형태로 실현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모델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로이뮤드의 행동 바탕에 인간의 그림자가 있다면, 작품이 말하는 '싸워야 하는 진정한 악'이란 바로 '인간의 어두운 부분'이 아닌가 하고. 그걸 증명하듯이 이 작품은 4쿨로 갈수록 로이뮤드의 위험성보다는 인간의 악함에 대해서 더 주목하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단 3쿨의 메인 빌런이었던 니라는 정의를 수호하고 시민을 지킨다는 경찰이라는 직함을 달고도 직업의식이나 책임감 따윈 전혀 없었고, 심지어 제 이득을 위해서 적대해야하는 로이뮤드에게 붙는 짓도 스스럼없이 했습니다. 고작 질투라는 치졸하고 편협한 감정 때문에 다른 인간을 짓밟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죠.
3쿨은 이 니라를 주인공인 신노스케의 대척점 포지션에 세워, 실제로 인간이 싸워야 하는 것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드러낸 이야기였습니다. 인간의 그림자를 받은 로이뮤드와 함께 움직이면서 주인공을 쓰러뜨리기 위해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드라이브는 지금까지 싸워야하는 진정한 악의 포지션에 로이뮤드를 세우고, 갈수록 그 로이뮤드의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본성을 서서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개해왔습니다. 그래도 3쿨까지는 악한 인간은 로이뮤드같은 괴물이랑 다를바가 없다는 것으로, 로이뮤드와 악한 인간을 같은 동일선상에 놓고 보았다면 4쿨에서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캐릭터가 바로 모아이 석상으로 등장한 4쿨의 메인 빌런 반노입니다. 이 친구는 자기 뜻을 위해서는 인간성도 뭐도 전부 버리고 자신을 위해 이용해먹을 작정인 극도의 자기중심주의자입니다. 작품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인 가족에 대한 소중한 마음조차도 이 인물에게는 부재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로이뮤드들은 3쿨에서부터 자신들의 동족이자 가족이나 다름없는 로이뮤드들을 위해 움직이는 모습들을 조금씩 보여주어왔고, 4쿨에 들어서는 로이뮤드 간부들간의 관계와 구도를 통해서, 반노의 인간성도 없는 부분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와서 드라이브가 지금까지의 대립구도를 완전히 뒤집어 인간의 악함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이 단순하게 로이뮤드는 선량하고 착한 로봇들이었다고 옹호하려는 시도는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하려면 드라이브의 다른 키 테마인 가족, 특히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해서 초반부터 많은 이야기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야기의 중심을 꿰뚫는 키워드에는 ‘아버지’가 존재합니다. 두 주연 라이더들도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대조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감상글에도 언급했듯이 신노스케는 아버지에게서 밝은 부분을 이어받은 사람이고, 고우는 아버지의 어두운 부분을 이어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좋든 싫든 자신에게 그러한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은 신노스케와 고우의 현재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죠. 신노스케는 아버지가 총에 맞은 과거에 얽매여 그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 애써왔습니다. 그리고 고우는 아버지가 로이뮤드들을 만들었다는 과거에 얽매여 로이뮤드들을 자기 손으로 전부 없애서 아버지의 오점을 남기지 않겠다는 비대한 책임감(마초적 허세)에 사로잡혀있고요.
3쿨까지 드라이브는 이렇게 아버지라 하는 자신의 ‘기원’과 마주함으로써(어머니가 어디갔는지 부분은 차치하고) 그 기원으로부터 비롯된 자신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계속해서 강조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노스케 부자의 이야기가 3쿨에서 마무리된 시점에서 4쿨이 고우의 아버지 이야기로 넘어갈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흐름이었다고 봅니다. 신노스케가 빛이었다면 고우의 아버지는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끊을 수 없는 혈연의 연결고리 같은 건 제가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은 아닙니다만, 이걸로 저는 고우의 그 모든 강박적인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도 끊을 수 없는 가족이라는 연결고리 아래에서, 그 한 구성원이 가진 죄악이라는 것은 결국 그 후손에게 이어지는 원죄나 다름없는 부분이니까요. 마치 먼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희생의 희생처럼...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이라는 말도 있듯이 ‘반노의 자식’, ‘악마의 자식’ 이라는 수식어는 계속해서 고우를 따라다닐 것입니다. 4쿨에서 고우는 자기 아버지와 적대함으로써, 자신의 그림자를 극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더 생각해볼만한 것은, 이 작품내의 아버지라는 개념과 원죄라는 키워드는 단순히 인간 진영에만 적용되는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드라이브는 계속해서 로이뮤드의 모델이 되는 것은 인간임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로이뮤드라는 존재를 만들어낸것도 바로 인간이죠. 물론 그렇다고 이 작품이 착하고 선량한 로이뮤드들을 인간이 괴롭히고있다-는 식으로 로이뮤드들을 옹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중간에 살짝 헷갈린 부분도 있지만 분명히 로이뮤드들은 글로벌 프리징을 일으켜서 인간들에게 해를 끼쳤고, 그 이후에도 인간들을 습격하는 등 인간사회에서 규정한 ‘악한 일’ 들을 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에 신노스케같은 라이더들이 로이뮤드들을 퇴치해온 건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로이뮤드들이 악한 일을 하게 만든 ‘기원’, 즉 ‘아버지’는 인간입니다.
드라이브 4쿨에서는 하트의 "진화를 이루는 것은 자기 자신의 힘이 아니면 소용 없다" 라는 대사를 기점으로, 약속의 인원수에 들어가기 위해 초진화를 힘쓰던 로이뮤드들 또한 나름대로 자신들의 기원에 대해서 탐색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런 모습은 3쿨에서 신노스케가 지금까지 자신의 아버지의 과거 사건을 파헤쳐나가는 모습과 겹쳐집니다. 마치 아버지의 숙원을 이루어주려는 자식처럼 각자 자신들의 모델이 실현하고자 했던 욕망의 형태를 좇아 대신 실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로이뮤드를 인간의 ‘자식’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이뮤드들이 한없이 인간에 가까운 사고구조를 가진 것, 그리고 이 로이뮤드들이 악하게 된건 다 아버지인 인간이 자식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에피소드 40화에서 밝혀지지만 로이뮤드들이 인간의 악한 감정에만 반응하게 만든 것은 인간인 반노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그런 제한이 없었더라면,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을 통해서 로이뮤드들이 다르게 움직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20화에서 백건우를 모델로 삼은 로이뮤드를 통해서 복선이 깔렸던 부분이며, 4쿨에 들어와 메딕의 진실, 하트 의 발언, 브렌의 행동 등을 통해서 차차 밝혀집니다. 굳이 그들뿐 아니더라도 인간의 선함 쪽에 있었던 과학자인 크림이 개발한 로이뮤드, 프로토 제로인 체이스가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선한 편’에 선 것을 보면 이런 점들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드라이브는 이를 통해 인간의 책임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로이뮤드는 악하다. 하지만 그 악한 것을 만들어낸 것은 인간이 아닌가? 그 원죄를 마주하지 못한 채 로이뮤드에게 당신들의 죄업을 전가시키고 그저 묻어두는 것은 아니냐고. 이는 반노와 그 아들 고우를 통해서 4쿨 전체에 걸쳐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인간에 한없이 가까운 지성체인 로이뮤드들을 만들어내고 쓸모가 없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학대하는 모습은 반노가 자식인 고우를 할 수 있는 만큼 실컷 부려먹고 쓸모 없어지자 헌신짝처럼 버렸던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학대할 수 있는 근거는 저것이 인간이 아니며,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기계라는 이유로 그들을 함부로 할 수 있는 정당성이 그리 쉽게 부여되는 걸까요? 악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존재는 영원히 악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거기에 대한 답은 다름아닌 드라이브 4쿨에 걸쳐 주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은 아버지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악영향은 받았을지 몰라도 자식이 반드시 아버지를 좇아 악의 길로 가는 것도 아닙니다. 고우에게 반노의 영향을 받은 어둠이 존재하지만 반노의 그림자에 잡아먹히지 않았듯이, 4쿨에서 로이뮤드들도 자신의 모델이 된 인간에 영향은 받았을지언정 나름대로 자신들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선택을 했으며 그에 따라 성장을 이루어갑니다. 이는 하트 진영의 로이뮤드들도, 인간 진영의 로이뮤드였던 체이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시점에서부터 작품은 이미 로이뮤드들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개체들임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이브의 결말이 씁쓸하기만 한 것은 그 인간의 원죄를 직시하고 로이뮤드를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가 아니라 로이뮤드 개별 개체로 인정하는 위치에 선 것이 신노스케뿐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반노가 자식인 고우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에게 도움이 안 되면 쓸모 없다고 매도했듯이, 세상에는 같은 인간으로 태어난 자기 자식도 자기 생각을 가진 독립 개체로 인정하지 않고 쉽게 그 행동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굳이 부모자식간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인종, 다른 나라 사람, 나와 다른 위치에 있는 타인을 쉽게 판단해버리는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로 인해서 반복되는 전쟁과 아픔은 하트가 언급했듯 인간의 역사 그 자체이며 인간이 계속해서 반복해오고 있는 원죄입니다. 하물며 같은 인간들에게도 이러한데, 인간이나 다름없는 사고를 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계에게는 어떻겠습니까. 인간들이 그들의 존재를 기계라고 인식하는 한 그는 자기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내쳐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체이스를 보면 이 적나라한 씁쓸함을 대번에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저는 하트 진영에서 벗어나 인간 진영에 들어간 순간부터 체이스에게는 인간세계에 있는 것 자체가 살얼음판을 걷는 위태로운 나날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인간을 지키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로이뮤드들과도 어울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간들이 체이스를 인정해주는가 하면 세번째 가면라이더로서 인간을 지켜주는 사명을 수행할 때에만 찾을 뿐이지 평소에는 어차피 그래봤자 똑같은 로이뮤드라면서 홀대받았거든요. 이부분은 3쿨에서 니라가 체이스에게 유괴혐의를 씌우며 했던 말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로이뮤드에 대한 관점을 놓고 신노스케와 대립을 이루는 고우만 봐도 체이스의 인간 사회에서의 입장은 충분히 볼 수 있구요.
어느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체이스이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오랜 시간 방황해왔고, 고민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이스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고, 단순히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의지로 자기 주변의 소중한 인간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것은 그 나름대로의 성장이라고 볼 수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남은 체이스의 보물이 면허증과 시그널바이크였던 것을 보면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옵니다. 그것은 체이스가 얻어낸 인간 사회로부터의 인정, 즉 자격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면허가 있는 한 체이스는 로이뮤드더라도 합법적으로 인간세계에서 운전을 하고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또 시그널 바이크가 있으면 체이스는 로이뮤드지만 인간세계에서 인간은 아니더라도 가면라이더로 인정받을 수 있죠.
신노스케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체이스는 체이스라고 존중해주었고, 나아가 로이뮤드를 이렇게 만들어낸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고, 이젠 모두 알고 있다고 그러니 그 원죄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했지만, 사실 드라이브 작중에서 그걸 깨달은건 신노스케뿐입니다. 왜냐면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질투할 만큼 특별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고우나 키리코가 그를 친구로서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들은 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게 정말로 성립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44화에서 체이스는 "친구란 마음이 잘 통하는 상대"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들은 체이스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을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한 이미지를 체이스 위에 씌우고 그것대로 판단할 뿐입니다. 키리코는 자신을 구해준 인간의 구원자 프로토 드라이브라는 이미지로 체이스를 보았고, 고우는 고철 기계에 불과한 로이뮤드로 체이스를 보았습니다. 특히 이 중에서 키리코는 언뜻 보기엔 체이스를 인정한 것처럼 보여도, "당신도 원래 착한 로봇으로 만들어졌으니까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라는 기대는 어쨌든 그가 인간이 만든 기계라는 고정관념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키리코는 인간답게 만들어졌지만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체이스의 고뇌는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을 지키는 기계의 인간적인 고뇌를 누가 애써서 알려고 할까요? 기계는 그냥 인간만 잘 지키면 되었지. 체이스의 최후가 더없이 안타까운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이 될수없는 자신에 대한 체념과 그럼에도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인간을 지키기로 한 체이스의 결심은 모두 잊혀지고, 그는 마지막까지 인간을 지키다가 사라진 충성스러운 로봇의 마지막으로만 알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트의 최후가 안타까운것은 결국 아무도 로이뮤드가 인간의 피조물로서 시작했더라도 인간과 다름없는 지성체로 인간과 동등하게 살아가려고 했던 것을 알아주지 못한 채 로이뮤드는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킨 로봇으로만 기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모든 승자의 역사가 그런 식으로 쓰여졌듯이. 그걸 알기에 하트는 자신들의 마음을 알아준 유일한 인간 친구인 신노스케에게 자신들의 진실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또다른 죄를 쌓은 채로 인간은 다시 살아갑니다. 드라이브 48화는 이 모든 것이 언제든 다시, 다른 형태로 똑같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있습니다. 이 장면의 장소, 구도 모든것이 1화를 다시 가져오고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또다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반복에 대한 암시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 내재된 원죄를 직시하지 않는 한 인간들은 또다시 그 죄를 반복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미래로 나아가는 신노스케의 모습이야말로, 이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가져야할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가면라이더 드라이브였습니다.
'가면라이더 >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포]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25~36화 감상 정리 (0) | 2019.02.08 |
---|---|
[스포]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13~24화 감상 정리 (0) | 2019.02.06 |
[스포]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1~12화 감상 정리 (0) | 2019.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