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쭉 달려 2쿨 분량에 도달했습니다. 드라이브 1쿨까지는 이 작품의 기본 세계관, 캐릭터, 앞으로의 중요한 떡밥들을 깔아놓는 밑단계였다면 2쿨은 등장한 인물들과 떡밥을 가지고 전개해나가는 구조입니다. 1쿨을 볼때도 느낀 부분이지만 가면라이더 드라이브는 확실히 정석적으로 기-승-전-결의 구조를 단단하게 쌓아가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13화에서 24화까지의 분량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것은 바로 1쿨 막바지에 등장한 고우와, 상당히 의미심장한 떡밥을 던진 로이뮤드 '체이스' 이 두 캐릭터로, 작품은 이 둘을 중심으로 기본 갈등 방향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로이뮤드 진영에서도 메딕이라는 신 캐릭터가 등장했지만 이 캐릭터는 이 방향과 조금 다른 쪽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은 고우와 체이스를 중심으로한 드라이브의 작품 진행구조를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래 글은 드라이브 13~24화까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해당 작품을 시청하신 분들만 읽어주시길 권장드립니다.
누가 옆에서 일부러 알려주지 않아도 이 캐릭터의 기본 스탠스가 배척! 로이뮤드 파인것은 13화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1쿨에서 언급되는 부분이지만 시프트카와 로이뮤드는 같은 기원을 공유하는데, 같은 '악'의 힘으로 '악'을 처치하는 가면라이더가 적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 라고 일갈하는 대사는 이 뒤로도 일관되게 보여지는 고우의 로이뮤드 증오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그 끝없는 증오의 이유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고우는 2쿨 내내 시종일관 세륜 로이뮤드 사라져주세요를 외치며 드라이브에서 말하고자하는 '로이뮤드와 인간의 관계'에서 대립항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대립의 중심이 되는 것은 1쿨에서도 인물 구도의 중심이 되고 있던 체이스인데요. 1쿨에서는 이 친구의 포지션이 로이뮤드 집단과 인간 집단 둘 사이에서 미묘하게 붕 떠 있는 제 3자의 포지션으로만 그려졌다면 2쿨에서는 고우의 등장과 함께 이 구도가 본격적으로 구체화됩니다. 1쿨에서도 분명 이 로이뮤드 집단의 간부라고 이름이 붙어있는 주제에 정치싸움에서 실권한 세자저하마냥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오는 게 좀 수상하긴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체이스의 정체가 밝혀지고 나니 그 모든 묘한 구도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애초에 체이스가 로이뮤드 진영에 속해있으면서도 거리감이 있어서 이 작품의 인물 구도상 제 3자 포지션으로 그려졌던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넘버가 공개되었을 때 이녀석, 설마? 하고 생각했던 게 정확히 맞아떨어져서 놀랐네요. 보통 0이라는 숫자는 프로토타입에 많이 붙이잖습니까. 그래서 바로 연결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원래 우리편이었다는 진실은 '로이뮤드는 제거해야 하는 것' 이라는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던 인간 진영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됩니다. 이를 계기로 표면상 같은 목적으로 뭉쳐 있던 라이더 진영에 의견차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고우는 여전히 극성 로이뮤드 배척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신노스케나 키리코는 원래 그에게 선한 마음이 있었다면 다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게 되죠. 이런 흐름은 굉장히 전형적이고 자연스러운 갈등구조입니다.
하지만 드라이브가 여기서 재밌는 것은 1쿨에서부터 계속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너희들이 정말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하는 느낌으로 계속해서 비꼬아오는 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놓고 밀어주지는 않지만 1쿨 분량에서도 너희들이 지금은 인간을 위협한다며 제거하는 로이뮤드들이 정말로 악한 건지, 진짜로 악한 것은 인간이 아니냐고 은연중에 깔아놓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게 2쿨에서는 체이스의 정체 공개와 함께 조금 더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14화부터 20화까지의 에피소드는 이 부분이 보다 강조되어 드러나는 에피소드들입니다. 여기서 로이뮤드에게 인간이란 진화를 위한 데이터의 매개일 뿐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또한 이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보면 로이뮤드의 행동양식이 그가 카피한 인간의 행동과 사상을 따라간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4-15화의 연예인 스토킹 사건에서는 인간 쪽이 잊어버린 기억을 로이뮤드가 읽어내고 행동하는 모습을, 18-20화에서는 카피의 매개가 된 인간의 사상이나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일련의 묘사들과 함께, 유독 2쿨에서는 로이뮤드가 카피한 모습을 '또 하나의 자신'이라는 표현으로 지칭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16-17화에서는 로이뮤드를 자신을 복제한 동일개체로 보고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구체화하기 위해 로이뮤드와 손잡기도 하죠.
이러한 묘사들은 이 작품이 로이뮤드를 통해서 인간을 미러링하고자 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로이뮤드가 매개가 되는 인간의 모습, 기억, 행동 모든것을 그대로 카피할 수 있다는 설정은 카피하기 전의 로이뮤드의 본질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로도 볼 수 있습니다. 로이뮤드는 욕망에 이끌려 인간을 카피하고, 그 후부터 진화를 위해 사고하기 시작하고, 자신이 카피한 인간의 사고방식과 사상을 따라 활동하기 시작하는 거죠. 이 과정에서 로이뮤드는 인간이 위선으로 감추거나 자기 스스로 부정하는 것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즉 로이뮤드는 인간의 그림자가 적나라하게 구체화된 모습인 거죠. 그렇다면 로이뮤드가 일으킨 피해의 모든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작품이 은근슬쩍 보여주고 있는 이 아이러니함 덕분에 가면라이더 드라이브는 정석적인 서사 흐름을 가져가면서도 독특합니다. 게다가 이 역설적인 지점을 눈치채지 못하는 작품 내 인물들의 모습은 결국 이 모든 것이 개선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것 같아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듭니다.
특히나 그 두 진영 가운데에서 휘둘리기만 하고 있는 이 친구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게 만드는데요. 적어도 로이뮤드 애들은 자기들이 로이뮤드로서 하나의 종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일종의 향상심과 목적이 있는 데에 반해, 체이스는 인간을 지키도록 만들어졌고, 지금은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수정당해 로이뮤드를 위해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브렌이 말하는 약속의 날에 정해진 숫자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구요. 로이뮤드에게 착한 마음이 있다면 같이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가능성을 20화에서 아주조금 좁쌀만큼 보여줬다가 걷어찬 이 작품에 체이스의 미래에 대한 복지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로이뮤드들은 체이스를 이용할 목적입니다. 그리고 인간놈들은 체이스도 로이뮤드랑 다를 바 없다고 굴고 있구요, 특히나 극렬 로이뮤드 반대위원회 협회장 고우님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신노스케나 키리코가 그를 받아줄 마음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도 '인간을 지키도록 만들어진' 체이스를 받아들이겠다는 거지 체이스가 체이스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요원하기만 한 것 같거든요. 체이스는 어딜 가던 마이너리티예요. 저는 그에게 자신의 의지는 있는 것일지, 자아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인지 정말 걱정이 됩니다.
다른 의미로 걱정되는 분도 여기 계시는데. 손수건을 먹어도 귀엽게만 보이니 저도 이제 슬슬 중증인 듯 합니다. 도입에서 잠깐 언급하긴 했지만 2쿨에 접어들면서 로이뮤드 진영에도 인간진영과 동일하게 신 캐릭터가 추가되었습니다. 바로 메딕이라는 이름의 로이뮤드로 소싯적 90년대 피씨방을 휩쓴 모 게임을 접한 적이 있다면 모를 수가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분의 등장으로 로이뮤드 진영에서도 갈등과 대립이 강화되기 시작하는데요, 인간 진영의 대립구도가 정치사상 싸움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면 로이뮤드 진영은 로코 로맨스물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모두가 하트를 좋아해 모먼트보다 제가 개인적으로 로이뮤드 진영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화면 전반적으로 비추기 시작하는 종교적인 미장센들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체이스나 하트 뒤로 비추던 스테인드글라스, 하트를 필두로 로이뮤드 간부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은연중에 종교적 상징물들이 드러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걸 제작진들이 노리고 가져간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체이스 뒤로 마리아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비추이던 장면이 눈에 밟혀서 떨어지지 않더라구요. 체이스는 인간에게서 태어난 로이뮤드로 인간과 로이뮤드 간의 중개자 포지션이죠. 그리고 마리아는... 이런걸 생각하고 나니 신경쓰이기 시작해 그래서 조금 더 주의깊게 살펴봤더니 108체의 로이뮤드도 그렇고 1쿨에서부터 로이뮤드의 간부들을 중심으로 종교적인 함의를 가진 요소들이 조금씩 보이는게 아니겠습니까... 그게 로이뮤드가 하트를 향해 가지고 있는 이유모를 애정과 맹목적인 숭배와는 어떤 연결점이 있을지 그건 차차 밝혀지지 않을까 기대해 보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도 분명 자기의 본체가 되는 인간이 분명 있지 않겠습니까. 3쿨에서 그들의 관계가 드러난다면 지금 제가 궁금해하는 것들이 대부분 밝혀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브렌의 비중은 적군요... 적지만 확실하게 등장때마다 귀여움포인트를 정기적금중이십니다. 너무 귀엽죠. 메딕의 등장으로 질투심을 불태우고 있는 브렌은 귀엽지만 대체 지인들이 말한 후반은 언제쯤인건지 답답하기도 하네요 일단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는데 1화 다음부터 전부 후반이어야하는거 아니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