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라이더 디케이드의 TV판 시리즈도 마지막 방송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라이더 시리즈와 달리 디케이드는 31화라는 콤팩트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건 제가 제일 처음 본 라이더였던 에그제이드보다도 짧은 분량입니다. 거기에는 신규 전대와 라이더의 방영시기를 엇갈리게 하여 더욱 많은 완구판매를 촉진하고자 한 토에이의 어른의 사정이 개입했다고 들었습니다.
디케이드 TV 시리즈 완결은 31화로 끝이 납니다만 TV시리즈 외에도 다양한 영상 매체들로 디케이드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조각처럼 존재합니다. 극장 매체로는 디케/더블 무비대전 2010, 올라이더 대 대쇼커, 초 덴오 트릴로지, 슈퍼 히어로 대전 2012, 그 이후에도 헤이세이 vs 쇼와 무비대전도 있고 TTFC에서 시청 가능한 넷판 디케이드라는 짤막한 개그 영상 시리즈, 테레비군 DVD로 나왔다던 테레비군의 세계 디케이드 영상물, 이어서 다른 라이더 TV시리즈인 위자드 특별편에서도 얼굴을 비춥니다. 게다가 최근 라이더인 가면라이더 지오에서도 등장하게 되네요. 거기다가 소설판 디케이드도 있죠. 소설판 이야기는 이전에 한번 감상글에서 짧게 언급하고 넘어갔었습니다. 그 외에 게임 매체인 간바라이징이나, 시티워즈 등 번외격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컨텐츠에도 디케이드의 이야기가 여러가지 형태로 등장합니다.
저는 사실 기본적으로 본 감상글을 쓸 때 본편 외의 매체를 끌어들이지 않고 본편에서 풀린 이야기들만 가지고 감상글을 작성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TV시리즈의 이야기는 TV시리즈에서 완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그제이드 감상글도, 블레이드 감상글도 극장판이나 브이시네마 등 외전매체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원칙은 디케이드에서도 동일하게 지키려고 했는데요.
가면라이더 디케이드라는 작품을 TV판만으로도 말할 수 있기야 합니다만 이 작품의 의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려면 필연적으로 TV시리즈를 벗어나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케이드는 공식적으로 '완결편' 이라 알려진 극장판 [디케이드X더블 무비대전 2010]까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디케이드 더블 무비대전은 아마존이나 구글플레이 일본계정을 통해 구매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극장판이 끼여들어갔기 때문에 평소와는 조금 다른 포맷이 될 것 같네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또한 마지막 감상글이다보니 상당히 길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할 이야기들이 정말 많아요. 이작품은 지금까지 해결해야할 가장 중요한 서사적 문제를 미적미적 미뤄왔다가 이 마지막 2개 에피소드 + 1극장판으로 미친듯이 풀어놨기때문입니다. 밀린 구몬 몰아서 해치운 것 같습니다.
아래 글은 가면라이더 디케이드의 스포일러가 당연히,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 해당 작품과 극장판을 보신 분들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디케이드 30-31화는 전체 디케이드 구성에서 종막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분위기상으로 따지자면 디케이드의 시작인 1화와 비슷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디케이드의 나머지 2~29화의 구성과 약간 붕 떠있는 듯한 느낌도 없잖아 있습니다. 왜냐면 그 사이에 이들이 운명을 벗어나보려고 수많은 세계를 구하고 라이더들과 친해지고 동료가 되고 츠카사는 세계의 파괴자가 아니라고 열심히 항변했었어도 결국은 이곳으로 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디케이드의 시작부터 이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던 것입니다. 서사적으로는 거창하게 운명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까놓고 말하면 이 이야기를 구성하기로 정한 토에이의 프로듀서와 각본에 의해서 애초부터 결정되어있던 요소일 것입니다. 창작자들에 의해서 그렇게 결정지어진 것을 캐릭터들이 극중극을 돌면서 저항한다 해보았자 정해진 수순을 밟는 걸 피할 수는 없죠. 막말로 소설을 쓰다보면 캐릭터가 작자의 손을 벗어나 행동하는 걸 느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창작자가 세계를 수정해 원하는 결말로 가게 만들면 끝입니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캐릭터가 운명에 저항하게끔 하는 것도 결국은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행동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디케이드에서 30-31화의 세계에 당도하는 것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토에이의 윗사람들 의사결정과 다음분기 사업계획이 바뀌지 않는 이상) 운명입니다. TV 밖의 메타 세계의 토에이 직원들도 못 바꾸는 걸 한낱 TV 속 캐릭터들이 바꿀 수 있나요. 중간에 어떤 여행을 하던 그들은 이곳으로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라는것을 츠카사는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디케이드는 이런 식으로 왜 알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전개에 필요한 정보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끼워넣는데 이런 기묘한 개연성 없는 전개가 용납되는 이유는 디케이드가 메타 요소를 시작부터 차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번 언급했었지만 디케이드의 작품 구조는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 작품의 테마이자 메인 키워드는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디케이드의 인물이 9개+a의 이야기 책 속으로 들어가 겪는 일들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디케이드라는 전체 작품이죠. 이 작품은 그와 동시에 이야기 속을 모험하는 인물이 이 세계들을 이야기책으로써 인식하고 있는 세계, 즉 현실 세계에서 온 것으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케이드의 각 캐릭터 포지션을 이 다이어그램에 따라 맞춰보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현실이 극 속의 세계에 개입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츠카사는 현실 세계와 극중극의 세계를 잇는 역할로서 존재합니다. 극 속 이야기 어디에서도 자신의 세계가 아니면서 각 세계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의 세계가 극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제 4의벽 밖에 있는 현실 세계에서 기원한다는 뜻이죠. 그렇기에 디케이드의 세계는 현실 세계와 극중극 사이에 존재합니다. 이러한 포지션과 구성 때문에 디케이드에서 메타발언들이나 라이더들에 대한 정보가 주어져도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작품은 츠카사가 왜 현실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라이더에 대한 정보들을 가지고 있는지 그 이유는 전혀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또한 츠카사는 자신이 왜 기억상실인지도 몰라요. 그리고 작품도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이 마지막의 세계의 당도할 때까지 츠카사의 기억상실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건 이 이상한 벙거지 모자의 아저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토리 중간중간 개입해서 나타나고, 다른 라이더들을 불러 츠카사를 제거하려고 하고, 맨날 윽박지르기만 하는데 뭐 하는 사람인지 일절 설명되지 않습니다. 나온건 나루타키라는 이름 뿐이고 아무튼간 길거리 돌아다니는 도믿맨들처럼 츠카사를 굉장히 귀찮게 합니다. 나루타키와 함께 등장한 키바라도 마찬가지죠. 당최 왜 나왔는지가 알 수 없습니다. 짐작해 볼 수 있는 건 그들 역시 현실 세계에서 온 존재들이 아닐까 하는 것 뿐입니다. 특히나 가면라이더 키바와 관련된 것들은 전작이었던 덕분에 이래저래 등장했으니까요.
디케이드의 불친절함은 설명을 안 하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는 것도 아닌 애매하고 어중간한 위치에서 계속 핵심 문제는 안 건드리고 회피하면서 스토리를 빙빙 돌리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진전이 없으면 작품이 쉽게 지루해지는데요. 디케이드가 이 지루함을 타파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틀에서 다른 라이더들의 세계를 계속 콜라보하면서 리이미지네이션으로 다양성을 추구한 것이 큰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다음에는 어떤 세계를 갈까, 츠카사의 다리는 얼마나 열일할까, 거기서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꼬아놨을까 하는 기대감이 디케이드를 계속해서 보게 하는거죠. 하지만 각 세계의 에피소드가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어도 디케이드 전체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갈등이 계속 해소되지 않고 있어요. 그건 츠카사라는 캐릭터의 변화에 한계가 있었던 것도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츠카사는 분명 여행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었고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성장해나갔습니다. 그리고 츠카사 주변의 캐릭터들도 변화했습니다. 그런데 그 변화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것들이 츠카사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9개의 세계를 도는 의무를 마치고도 계속해서 여행을 해나가기로 마음먹었지만, 새롭게 당도한 세계에서도 그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마치 병마개로 막힌 병 속에서 뛰는 벼룩과도 같은 상황입니다. 벼룩은 마개를 넘어서 뛸 힘이 있지만 외부에서의 물리적인 강제력(병마개)가 있는 한 정해진 성장 범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처럼 츠카사도 변화하지만 그 변화의 선이 어떤 한계점을 넘지 못하는 모습들과 불안이 조금씩 내비쳐졌는데요. 이번 에피소드에서 그 불안이 표면으로 한번에 폭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자기 세계가 없으니 그런 속편한 소리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잔인한 말을 내뱉는 극속의 사람들에게 츠카사는 얼마나 많은 실망과 슬픔, 그리고 좌절감을 느꼈을까요. 극 속의 인물들에게 있어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입니다. 인간은 결국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꼭 모게임의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험가가 된 느낌이겠군요 츠카사. 아무리 츠카사가 이레귤러라고 해도 일단은 감정도 있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친구들이 짱돌을 굴려도 왜 세계가 갑자기 영국 신사들이 첩보원하는 영화마냥 뻥뻥터져나가고 있는지는 도무지 제대로 된 해답이 안 나옵니다. 츠카사가 일단 파괴자라고 하니까 급한 대로 츠카사부터 때리거나 아니면 눈앞에 보이는 것들과 막 닥치는대로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튼간에 비판적 사고력이 부족한 친구들입니다. 꿈에서 디케이드가 파괴자라고 나온다고 막 일단 선빵부터 치고 보려고 하고 지금도 일단 세계가 터지니까 싸워야한다고 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이친구들한테는 당장 살 집이 실시간으로 철거되고 있으니 앞뒤를 잴 여유가 없다는 건 이해하고 있습니다.
대체 그럼 세계는 왜 파괴되고 있는 것일까요? 하루 씩 밀려온 구몬이 결국 마감일에는 대폭탄이 되어 떨어지듯, 이렇게 덮어놓고 미뤄온 찜찜한 핵심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에, 결국에는 30-31화에서 묵혀온 문제들이 뻥뻥 터지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에서도 영 해결할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디케이드 TV시리즈의 환장성을 잘 볼 수있겠습니다. 거기에 사죄라도 하듯이 츠카사의 예쁜 다리가 상당히 많이 잡히는데요 눈은 즐겁습니다만 뇌는 계속 뭐지? 뭐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또다른 라이더분이 출연하시는데요. 디케이드 1화에 나왔던 (진)키바의 세계 라이더처럼 마지막 에피소드에 접어들어 (진)블레이드의 세계 라이더가 나와줬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의상 또한 키바 1호라이더와 정 반대로 맞춰입었거든요. (진)키바의 주인공은 흰색 옷을 베이스로 입었지만 이분은 검은색을 베이스로 입고 있어 서로 대치되고 있습니다. 물론 보고 있는 저는 영문을 몰라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좀 더 뭔가 알고 있는 건 분명한데 각본의농락인지 아무튼 제작진들은 뭔가 명확하게 말해주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렇게 모든 상황에서 핵심을 건드릴 때마다 설명은 안 해줄거지만 너만 없으면 되니까 나가라 태도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진)키바의 와타루와 동일한 포지션이라면, 그 또한 현실 세계에서 개입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여기에 등장한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진)라이더들은 각각 이작품의 시작, 중간, 그리고 끝에서 한번씩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거든요. 안그래도 밀린 구몬을 지금 급히 하고 있는 작품인데 켄자키를 의미없이 넣었을 리가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진)라이더들이 등장하는 것도 가면라이더적인 관점에서 볼 수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이야기는 조금 뒤에서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불쌍한 츠카사 라이더에게 쫓기네 저는 마음이 아픕니다. 츠카사의 마음이, 지금까지 계속 깊은 곳에서 말하지 못하고 있었던 감정이 이 장면에서 툭 튀어나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나한테 사라지라는 거냐. 라는 대사는 단순히 어디론가 떠난다는 의미가 아닌 츠카사가 본인의 존재를 배제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츠카사는 떠나다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가 어떤 세계를 가든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사라지다 라는 말을 썼던 거죠. 내 존재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거냐. 그 마음에 저는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애가 어디 있다고 무조건 나가래 없어지래... 이 환장스러운 츠카사 때리기를 좀 더 보고 나면 30-31화 전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세계가 파괴되고 있는 건 다른 어떤 적 때문도 아닌 카도야 츠카사, 디케이드 본인 때문이다. >
<디케이드 캐릭터 친구들이 무슨 별짓을 다 해도 아무튼간에 세계는 대충 망할 거고 그건 다 츠카사 때문이다>
<아무튼간에 츠카사때문임>
그리고 본편은 설명이 없습니다.
말도안되는 황당한 우기기들 속에서 츠카사가 얼마나 살기 싫을까요. 내가 살기 싫은 삶을 강요하면서 사라지라고 종용하는데도 살아가고 싶으니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만들어보려는 츠카사에게 나츠미는 작지만 살아갈 의미가 되는 하나의 존재이자 세계입니다. 이와중에 카이토와의 마음을 다한 열렬한 진정성 고백타임이 시청자를 더욱 당황스럽게 하는데요. 카이토는 특히나 행동동기가 드러나지 않는 편이라 이런 극적변화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몇 안 되는 카이토의 심경을 표현하는 에피들을 그러모으면 그의 이런 행동도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겨우 자신을 받아들여줄 사람들이 생겼고, 한때 멀리했던 감정들도 조금씩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세계는 망해가고 메타 세계의 존재가 이제 이야기는 끝이라고 막 주섬주섬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카도야 츠카사가 자신의 길을 나아갈 수록, 세계는 끝을 향해 갑니다. 카이토는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을 원하지 않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이토는 세계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꽁꽁 숨겨왔던 진심을 말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전반적으로 정말 혼란스러운 에피소드입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혼란스러운 디케이드라는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작중의 사람들은 이 작품에 대해서 아는 정보가 없습니다. 모든 정보는 메타 세계인 현실쪽에 집중되어있고, 이 정보는 잘 나오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메타 세계에 관련된 것으로 보여지는 인물들이 등장할 때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츠카사는 이미 기억이 없고 나루타키는 도움이 안 되고 카이토는 그런것보다 보물과 츠카사 쫓아다니는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진)라이더가 등장해주는 지점이 중요합니다.
생각해보면 1화에서 9개의 세계를 돌아야 한다 말한 것도 전작의 주인공인 키바의 와타루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도 등장해서 의미심장한 말을 전하죠. 이 모든 환장스러움이 일어난 이유를 여기서밖에 찾을 수 없으니 이 장면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여기서 와타루는 이렇게 말하는데요
"창조는 파괴로부터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9개의 라이더들을 파괴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가 당신을 쓰러트리겠다." 이 말을 요모조모 뜯어보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더 디케이드의 작품 구조와 기획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한눈에 보기 편하도록 다시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 위에서 디케이드 작품에 개입하는 실제 라이더들은, 현실 세계 층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디케이드라는 작품의 기획 의도는 헤이세이라이더 1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위한 기념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케이드는 이야기 그 자체를 테마로 하여 각각의 세계를 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실제 라이더들의 세계와는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디케이드 방영 당시에 "나의 뫄뫄는 이렇지않아아아" 하고 항의했던 것은 디케이드가 여행하는 그 9개의 세계가 실제 라이더들의 세계와 유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디케이드의 또다른 테마이자 컨셉 키워드인 '이미지'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감상글의 초반에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 이론에 대해서 언급하고 지나갔는데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시뮬라르크란 원본의 복제를 뜻하고, 시뮬라시옹은 그 복제가 결국은 원본으로 인식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디케이드가 여행하는 세계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진짜 라이더 세계가 아닙니다. 진짜 배우들도 안 나오고, 스토리도 원본의 요소를 차용해 온 비틀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원본이 아닌것을 보면서 원본을 인식한 것입니다. 따라서 디케이드의 극중극 세계들은 그 자체로 현실에 있는 진짜 라이더들의 세계의 거울상, 상징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연결고리를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보면 디케이드는 다른 무엇도 아닌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이야기'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는 시리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편에 수많은 메타적인 요소와 서사 구조에 대한 요소들이 상당히 녹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작품 그 자체도 그런 서사 장치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조따 황당한 장면이 대놓고 나올 수가 있는 것이죠
실시간 방영때 이 장면을 눈앞에 두고 사람들이 가졌을 황당함을 지금의 저로서는 도무지 짐작도 못 하겠습니다만, 놀랍게도 가면라이더 디케이드의 TV시리즈는 여기서 막을 내립니다! 정말 놀랍지않나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이 결말 좋아합니다. 이 장면이 디케이드 작품의 '분기점'이 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곤혹스럽긴 합니다만 이 장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다시 (진)와타루의 대사로 돌아가야 합니다.
[창조는 파괴에서밖에 시작되지 않는다]
이 문장은 디케이드라는 작품에서 꽤 중요한 포지션에 있는 대사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만든 제작진이 시라쿠라P 산하의 제작진 일동이라는 걸 생각하면 왜 디케이드에게 노골적으로 '파괴자' 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매년마다 신 라이더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라이더는 필연적으로 작품부터 시작해 완구까지 이전 라이더와 대결하게 됩니다. 팬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완구 매출치나 시청률을 비교당하고, 캐릭터나 전개를 비교당하기도 합니다. 신 라이더는 시작부터 구 라이더와의 싸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전에 시라쿠라P의 라이더 작품에 대한 최근 인터뷰를 보았는데, 라이더를 만드는 제작진들도 이전의 것을 답습하거나 하지 않고 경쟁하는 느낌으로 제작한다는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갈등의 주 원인입니다. 그러니 새 라이더가 자신의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이전 라이더를 때려눕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츠카사는 자신이 라이더로서 자리하기 위해서 이전 라이더를 파괴해야하는 숙명을 가지게 된 거죠. 그럼으로서 새로운 라이더의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구습을 버리는 것에서 새로운 것은 시작합니다. 파괴가 창조에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츠카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각 진짜 라이더들의 세계를 상징하는 과거 9개의 세계를 전부 돌면서도 누군가를 파괴해 자신을 정립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각 세계의 주인공들이 나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것은 본디 츠카사가 섬세한 성격의-그렇게 보이지 않지만-소유자이기 때문이겠죠. 그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세계를 인식하고 알아챕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행동하던, 세계는 파괴의 길로 나아갑니다. 그것은 서사적으로 보았을 때 츠카사의 존재 자체가 각 이야기 속에 나오도록 설정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의 발길이 닿는 순간 원래부터의 세계관은 비틀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필연적인 파괴에서 츠카사를 잃고 싶지 않은 캐릭터가 있습니다. 나츠미나 유스케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부분에서 츠카사와 대치되는 존재로 저는 카이토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디케이드에 주어진 여러가지 현실적인 제한과 한계는 모두 현실 세계, 즉 창작자에게서 부여된 일종의 운명입니다. 카이토는 그 제한으로부터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고 싶어하는 캐릭터입니다. 그의 결정 대사가
"나의 여행길은 내가 정한다"
라는 것과, 현실세계에 어느정도 발을 걸치고 있는 그의 캐릭터적 층위를 고려하면 그가 비록 극속의 세계에서 태어난 캐릭터이지만 창작자에게 저항하고자 하는 성정의 메타캐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극 밖의 세계에서 태어났지만 창작자에 의해 재구성된 극속의 세계들에서 자신의 세계를 찾고 싶어하는 츠카사와 완전히 정반대의 포지션입니다. 아마 그라면 츠카사를 구하고 싶을 겁니다. 그게 카이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창작자에 대한 엿먹이기니까요.
하지만 현실 세계가 정한 제한은 31화뿐입니다. 그것도 파괴자의 직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30-31화에서 반드시 좃되고마는 이야기죠. 아마 카이토는 이 흐름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초반에 나루타키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나, 츠카사의 과거를 아는 눈치를 보이거나, 다른 세계들이나 벨트, 아이템들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점들로 짐작해볼 수 있겠습니다. 비록 그는 이 이야기 세계에서 비롯된 캐릭터이지만 어떠한 계기로 인해 현실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디엔드라이버의 적합자가 되었을 겁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츠카사가 나아가는 걸 막을 수 없다면, 방법은 다시 하는 것 뿐입니다. TV시리즈 결말로 츠카사는 구작 파괴하기 싫어서 이야기는 다 잊혀졌고 결국 가면라이더 사가는 망해버렸습니다 데헷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디케이드의 이야기 구조가 상징하는 것을 미루어보면 그것은 결국 기념한다고 해놓고 패드립치는 꼴이나 다름 없습니다 토에이 제작진들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모양새가 됩니다. 하지만 현실세계의 제한은 TV시리즈는 31화로 끝. 더 늘려 줄 수 없어. 땅땅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한가지뿐이죠. 다시 처음부터 TV 시리즈의 루트를 재시도해보거나, 다른 매체에서 디케이드의 이야기를 이어가면 되는 겁니다. 츠카사 말마따나 9개의 세계 외에도 세계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니 브라운관 TV 밖의 세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세계를 건너다닐 수 있는 그가 TV시리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TV시리즈 디케이드는 여기서 끝나 다시 1화로 돌아가지만 TV에 비춰지지 않았던 무수한 루프 중 어느 순간에 츠카사가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디엔드의 세계에서 츠카사가 카이토를 바라봐주었던, TV에서 방영된 루프회차처럼요. 그 말처럼 30-31화는 재편집판이 따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디케이드는 매체의 벽을 넘어 극장판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이 작품이 어떤 TV판 흐름에서 도달한 루트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식적으로는 이 작품이 디케이드의 완결편-소위 말하는 진엔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루프 설을 노리기라도 한 것인지 이 디케더블 극장판에서 츠카사의 복장은 약간 거칠게 어레인지 되었지만 TV판 1화에서 입었던 복장과 상당히 유사하다는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재편집판 루트를 타지 않았다면 다시 1화의 복장으로 돌아갔을 거라는 거죠. 츠카사는 기억을 잃고, 버클을 잃고, 다시 히카리 사진관으로.
이 루트의 츠카사는 자신이 파괴자라는 사실을 결국에는 받아들이고 그 운명대로 행동하기로 한 츠카사입니다. 그리고 차례차례 라이더들을 쓰러뜨려 나갑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다른 이들을 파괴하고 싶지 않은 게 진심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른 라이더를 마주하는 방법은 이전 라이더와 싸우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전교 1등 되자고 자기 위에 있는 놈들을 싹 쓸어없애는 것같습니다...즉 츠카사에게 파괴란 메타세계로부터 자신을 인정받기 위한 과정의 하나로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는 메타 세계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니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주겠다고 본 것이지만요. 그 운명이 파괴자를 안하면 꼰대부모처럼 난리법석을 떨어대니 반항아를 그만두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츠카사의 모습을 탐탁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세계의 존립보다는 츠카사를 구원하고자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바람에도 무색하게 이야기는 잔인하게만 흘러가고, 디케이드는 끝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검은 밤의 배경. 이 배경은 1화에서 츠카사에게 사명을 줄 때 한번 등장하고, 두 번째로는 마지막에 한번 등장하고, 이 극장판에서까지 총 세 번 등장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장소에 있다가 돌아가는 연출과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 등 여러가지로 미루어보아 이 세계가 현실 세계를 나타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와타루가 전달하는 정보들이 디케이드 작품의 가장 핵심들을 짚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품 의도들은 창작자를 대변하는 캐릭터들이 아니면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와타루는 어김없이 굉장히 중요한 대사를 하는데,
[이야기는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었다, 하지만 디케이드와 싸우는 것으로 인해 다시 한번 더 되살아날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는 디케이드가 가면라이더 10주년 기념으로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노골적인 대사입니다. 이 말은 결국 디케이드는 옛날 라이더들을 사람들에게서 기억해내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도구이자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이야기는 언젠가 잊혀집니다. 지금의 아이들 중에 가면라이더 쿠우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적어질 수록 신의 힘이 약해지듯이, 이야기도 기억하는 사람이 적어질수록 존재를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디케이드가 (비록 다르게 꾸며진 세계이지만) '과거의 세계' 라 이름붙은 이야기를 여행함으로써, 현실 세계의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던 그들의 기억을 되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놓고보면 디케이드는 상당히 자기가 만들어진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한 셈입니다. 10주년 기념으로 라이더 작품들을 콜라보레이션 하기 위해 만들어진 편리한 존재. 하지만 그 목적에 너무도 충실한 나머지 디케이드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디케이드에게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이야기란 어떤 한 작품이 구성되기 위해서 쌓여진 세계관이자, 한 인물의 과거 등 행동의 동기가 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이 작품이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이야기들을 주제로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이야기란 지금까지 쌓여온 각각의 라이더 서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디케이드에게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디케이드가 지금까지 디케이드로서 주체적으로 움직였던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는 각 세계의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력자의 포지션에 서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자신을 항상 제 3자, 방관자로서 행동해왔습니다. 초반의 에피소드들에서 츠카사 본인이 움직이기보다는 쿠우가의 세계의 주인공이었던 유스케가 더 주인공처럼 행동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결국 가면라이더 디케이드는 이전까지의 가면라이더 역사를 다시 복습하는 리뷰 시간이지 디케이드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디케이드가 조각조각 정보가 없고 다 적당히 대충대충인 걸 이런 식으로 변명하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그게 디케이드의 메인 컨셉하고 통하고 있어서 분합니다... 제작진놈들...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디케이드는 정식 가면라이더가 아니란 뜻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이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이야기'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는 작품이라고 했었는데요. 거기서 디케이드가 중심으로 던지는 문제의식은 그 이야기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일회성의 캐릭터는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한 작품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입니다.
츠카사는 정식 가면라이더라고 인정받은 (진)라이더의 이야기와 콜라보레이션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즉, 그 자체가 '라이더 캐릭터'로서 설정된 게 아니라는 거죠. 형태는 유사하게 가지고 있습니다만 잘 들어보면 라이더가 아니라 디케이드, 악마, 파괴자로 더 많이 불리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가면라이더'라는 말은 츠카사만 그렇게 말하는거죠) 하지만 콜라보레이션을 하자니 여러가지 현실 세계의 사정으로 인해 이미지로서 그 세계의 이름만을 빌려온 과거 라이더의 세계를 설정했습니다. 거기서 태어난 것이 나츠미, 유스케 그리고 카이토입니다. 카이토의 경우는 알 수 없는 (현실 세계에서 결정했겠죠) 이유로 메타적인 포지션을 취하도록 캐릭터성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츠카사가 과거 라이더의 이야기인 9개의 이야기를 모두 돌았을 때, 그, 디케이드라는 것의 존재의미는 달성되어 없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비키의 세계 이후로 네거의 세계가 등장한 것입니다. (진)오토야는 거기서 당신의 이야기속 인물로서 존재의의는 끝났으니 네거의 세계에 안주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츠카사는 이대로 파기되어 사라지는 걸 택하지 않았습니다. 세계는 무수히 많으니 그 어딘가에서 자신의 세계를, 자신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세계를 더 돌아 디엔드의 세계, 아마존의 세계, RX/블랙의 세계, 방송을 넘어 전대의 세계까지도 여행했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츠카사의 세계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도되지않은 츠카사의 행동은 현실세계의 인물들과 창작자들이 보기에는 탐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나타내주는 인물이 바로 둘 있는데 한 명은 나루타키입니다. 저는 나루타키라는 캐릭터가 처음에는 각본가의 오리캐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만든 극중극의 세계 각본을 어지럽히는 카도야 츠카사라는 존재를 미워하는 건 아닐까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는 각본가의 오리캐라기보다는 이 이야기를 관측하는 현실의 가면라이더 시청자들을 대변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는 츠카사를 라이더로서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도 그럴것이 그가 사랑하는 과거 라이더들의 이야기를 자의로든 타의로든 마구 바꾸고 파괴하고 있으니까요) 가면라이더 시리즈는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TV시리즈의 30-31화에서 그가 싫어해 마지않는 반쪽짜리 라이더 츠카사에게 세계를 구해 달라고 부탁해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위에서 언급했던 (진)블레이드인 켄자키 카즈마입니다. 비록 극중극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진짜 가면라이더의 세계를 투사하여 만들어진 이미지. 그 세계들이 파괴되면 자신들의 세계도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애초에 츠카사는 라이더들이 지켜야 하는 존재도 무엇도 아닌 그저 세계를 잇는 다리만 되면 족한 존재였습니다. 인간의 존재가 허락되지 않는 네거의 세계에서 츠카사는 환영받았으니까요. 그건 츠카사가 자기들이 구해야 할 인간 캐릭터로서 설정된 인물은 아니라는 거죠. 로봇 청소기가 어느날 갑자기 청소는 안 하고 자아를 찾는 여행을 떠나서 사람들을 마구 습격하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로봇 청소기를 구하는게 맞을까요 아니면 로봇 청소기를 치우는 게 나을까요. 당연히 치우는 게 먼저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츠카사에게 나가라 라고만 말했던건(다소 폭력적이지만) 켄자키 나름의 배려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거의 세계든 어디든 가라고 하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최후에는 (진)키바의 와타루마저 츠카사에게 냉랭합니다. 그건 1화에서 츠카사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그가 주어진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해버렸기 때문에 세계가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디케이드는 어차피 이야기가 없는 존재잖아요? 그러니 이 라이더 세계에서 빠져나가도 별 문제 없겠죠. 애초부터 그에겐 자신의 세계에서 이어나갈 서사랄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츠카사의 세계는 수많은 세계와 세계를 이어가며 존재했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무의 공간처럼 보였던 곳에도 물질은 존재하고 관측자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빛나는 별들 사이에 숨은 암흑물질처럼, 실수 체계의 평면에는 표시되지 않지만 허수가 존재하는 것처럼 현실에서는 관측불가능하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존재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존재를 기억하고 이름을 붙여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은 감춰져 있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츠카사를 지금의 츠카사로서 있게 하는 것은 이제는 지워진 과거나, 그가 찾아 헤맸던 자신의 기원이나 세계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츠카사가 머물렀던 자리마다 남긴 기억이, 경험이 지금의 카도야 츠카사를 구성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각본 대로가 아닌 츠카사가 스스로 수많은 세계 속에서 만든 흔적들이 바로 디케이드의 세계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것 또한 가면라이더의 이야기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디케이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디케이드에는 츠카사가 취할 수 있는 행동만큼 무수히 많은 가지가 있고, 때문에 누구보다 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디케이드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호한 개연성과 맥거핀으로 남긴 것들을 정당화하는 역설을 만들어줍니다. 카메라가 비치지 않은 곳에서도 츠카사는 자신의 힘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디케이드의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은 당신이 엮어 만드는 그 어떤 것이라도 츠카사가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디케이드 관련 영상물은 상당히 많은 편인데, 공식에서 제시하는 시열대가 있지만 이 작품들을 보는 순서도 여러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올라이더 대 대쇼커를 본편 중으로 포함한다던가 아니면 아예 다른 루트의 엔딩으로 본다던가 등 다양한 설이 존재하죠. 그리고 어느것에도 하나의 정답은 없습니다. 그것조차도 디케이드가 내포하는 가능성이자,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극장판의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음악이 이 작품의 주제를 너무나도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서 그 여행을 계속해나가자. 그 말처럼 디케이드의 여행은 계속될 것입니다. 가면라이더 시리즈가 이어지는 한, 팬들의 기억속에 이미지로서 남겨지는 한 TV의 세계에 비쳐지던 그렇지 않던 그의 여행과 이야기에 끝은 없으니까요. 가면라이더 디케이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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