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내년에 있을 히어로 온리도 준비해야 하고 이래저래 할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디케이드도 벌써 20화를 넘어서 여기까지 왔네요. 이번 세계는 카이토 다이키의 세계입니다. 여기까지 쌓은 관계나 캐릭터를 보면 솔직히 디케이드라는 작품이 너무 짧지 않나 하는 걱정이 많이 드는데요. 이것저것 할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네요. 여태까지 카이토와 츠카사에 대해서 디케이드가 벌리는 건 많아도 명확하게 보여주는 부분들이 적다보니 재미있게 보면서도 아쉬울 때가 가끔 듭니다.
뭐, 안 보이는 부분은 제 상상으로 나름대로 채워 넣으면 되겠죠 늘 그랬듯이 말입니다. 매번 개인적인 해석으로 가득한 아무말 감상을 적고 있습니다만 여기저기서 봐 주러 와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럼, 디케이드 22~23화입니다. 이런저런 얘깃거리가 많을 것 같아 이번에도 스포일러가 있을 것 같으니 디케이드를 보신 분에게만 아래 글을 추천드립니다.
디케이드 22화입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20화까지의 디케이드의 흐름을 조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1화는 프롤로그로 본다면 2화부터 디케이드는 2화 1세계의 구조로 총 9개의 세계를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츠카사는 난데없이 나츠미의 세계에 난입해온 기억상실증 카메라맨으로 아방가르드한 전위예술을 이룩하고 있는 친구죠. 그리고 1화부터 세계가 적당히 멸망했구요. 츠카사는 모든 가면라이더를 파괴하는 존재로 9개의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를 구하는 사명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2화부터는 쿠우가의 세계부터 시작해서 과거의 세계를 돌게 되었는데요. 우선, 디케이드의 흐름을 파악하기에 앞서 제가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작품이 콜라보 작품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특히나 주인공인 츠카사의 캐릭터를 따라갈 때 그가 메타적인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계속 기억하면서 작품을 보려고 했습니다. 그의 콜라보 캐릭터적 성격은 초반에서부터 자주 드러났는데
1. 어떤 세계에서도 이방인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음
2. 다른 세계의 설정을 알고 있음
이 두가지의 요소가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디케이드의 세계관이 나츠미의 세계를 포함한 9개의 세계는 일종의 모형정원 같은 것이고 그 모든 세계의 위에 츠카사와 카이토나 나루타키와 같은 메타 캐릭터들의 세계가 이를 지켜보는 연극무대와 같은 구도로 생각해왔거든요.
제가 매번 좋아하는 이 장면도 츠카사가 관객처럼 앉아있지않습니까 원래대로라면 이친구는 이 화면에 있는 게 아니라 이 화면의 반대편에서 나츠미의 세계를 찍고 있는 위치였어야 한단 말이죠. 그런데 그런 친구가 스크린 안의 세계에 뛰어들어, 아니 어쩌다가 휘말려 와서 자기 세계도 까먹고 힘내고 있으니 얼마나 안쓰러운지 모릅니다. 자기 다리의 진가도 몰라주는 세계에서 고생하고 있단 말이에요. 정말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메라 너머에서는 이 천연기념물에 필적하는 다리를 애지중지 해주는 그런 다정하고 상냥한 세계가 있는데 말입니다. 어쩌면 나츠미가 츠카사의 눈을 가리고 있는 건 츠카사가 눈을 떠 자기를 찍고 있는 그 빛나는 메타세계의 관찰자를 발견하는 순간 큰 일이 일어나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타세계의 관찰자 중 한명이 저군요
아무튼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디케이드를 이해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카이토 다이키의 세계가 나타났을때 굉장히 놀랐습니다. 카이토 역시 메타캐릭터의 한명으로 그의 세계가 나올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즉 그의 세계 역시 츠카사의 세계와 동일하게 TV 너머 시청자의 세계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이토 역시 연극 무대 위의 수많은 극 중 하나에서 나오는 캐릭터였을 뿐이란 말인가요. 츠카사의 머리가 갑작스럽게 넘김머리가 되고 양복핏이 헐렁해진것과 같은 정도의 충격입니다.
그러나 그의 머리모양이 얼마나 어떻게 바뀌던 그의 아름다운 다리는 화면에 함께 잡힌 가냘픈 한떨기 꽃처럼 언제나 고고하고 단정합니다.
현명한 조상님들이 하신 말씀이 있죠 바로 과유불급. 지나치면 모자른 것이나 다름없다. 그 말처럼 선이던지 악이던지 어떤 한가지가 너무 지나치면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 인위적인 위화감을 발생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프레임에 츠카사의 다리가 안 나올 때마다 제 손에 불발탄이라도 들고있는 것처럼 오들오들 떨었답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서도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굉장히 익숙한 세계관의 무서운 친구들이 나오기 때문에 저는 너무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번 세계에서 츠카사는 평범하게 수트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저 수트가 말단 영업사원 츠카사가 첫 출근을 기대하며 밤새 다리미를 들고 칼각을 세워 잡았을 옷이라고 생각하니-물론 츠카사는 단 한올도 다리지 않았습니다만-그 평범함조차 반짝이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
9개의 세계를 모두 돌았음에도 여전히 츠카사는 각 세계의 스토리 메인라인에서 한 걸음 비껴서 있습니다. 이러한 객관적인 시점-이방인-의 유지는 지난번 에피소드와 동일하게 계속되고 있는데요. 9개의 과거 라이더의 세계를 다 돌고, 네거의 세계라는 전환점까지 거쳐서 새로운 세계에 왔음에도 츠카사가 여전히 이야기에 중심에서 살짝 비껴 있다는 것은 결국 디케이드의 테마가 '여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츠카사는 '가면라이더 콜라보 캐릭터'로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야기를 콜라보하는 캐릭터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네거티브의 세계를 거치면서 디케이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외연이 한층 확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카이토 다이키이기에, 사진관 친구들은 그의 흔적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츠카사가 앉아 있는 포즈를 정말 좋아합니다. 팔걸이가 있는 의자든, 없는 의자든, 소파든, 그것이 클래식한 의자이든 모던한 스타일이든, 스타일과 소재를 가리지 않고 츠카사가 앉아있으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존재인 것처럼 완벽한 형태의 예술로 승화됩니다. 마치 태초에 츠카사와 의자가 하나의 존재이자 소울메이트였던 것처럼 그의 아름다운 다리를 완벽하게 표현해 주는 것은 그가 자리에 앉았을 때인 것입니다.
카이토가 보물을 훔치고 자유를 사랑하는 친구인 것은 그가 살아온 세계에 대한 반항작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사회'의 폐쇄성은 굉장히 숨막히기 때문입니다. 한다리 건너 한 집의 수저 젓가락 수까지 알고 지내는 세계에서, 평화라는 명목하에 강요된 친절을 계속해오는 것은 그 뒤에서 썩어가는 것들을 아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환멸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마치 세뇌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짓는 부자연스러운 미소와 인형같은 사람들이 이상하단것은 굳이 화면속의 제복을 입고 허우대가 멀쩡한 이 친구가 수영장에서 첫등장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이상한 사람들과 이상한 사회와 현실감에서 동떨어진 츠카사의 다리
자신의 세계에 왔기 때문에 조금 감상에 젖은 것인지 오늘의 카이토는 조금 더 예민하고 까다롭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네요. 지금까지 카이토와 츠카사는 소중히 하는 것에 대해서 대립각을 세워오고 있었습니다. 둘다 세계를 이동할 수 있는 방랑자이자 여행자이지만, 그 세계에서 츠카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가치들이고 카이토가 찾는 것은 형이하학적인 물건들이었습니다. 특히나 카이토가 여태껏 훔쳐왔던 물건은 다름아닌 라이더의 벨트, 혹은 그 최종폼에 준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아이템이었단 말이죠. 그의 그런 과거 행보들을 생각하니, 그가 일관되게 라이더 아이템을 노려왔던 것은 고생대 선캄브리아기부터 살아왔을 생명체들에게 지배당하는 작디 작은 그의 세계의 앙시엥 레짐을 깨부술 하나의 혁명의 불씨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블루~~ 그것은 분노한 사람들의 피~~
물론 혁명적인 신체를 가진 츠카사의 다리 얘기를 빼놓을 수는 없지요. 제가 매번 다리 얘기만 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타박받고 있습니다만 츠카사의 다리 얘기를 하기 위해서 선정한 이미지이니 당연히 다리 이야기를 안 할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름대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이 감상글을 적고 있다구요. 마치 제주도 돌담위에 살포시 앉아있는 모습이 제주도 관광홍보대사로 오셔도 손색없을만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테이크가 상당히 깁니다만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컷을 고심하여 선별하였습니다. 츠카사의 척추와 종아리가 평행선을 그리고 허벅지가 완벽하게 직교하여 수학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있는 소중한 컷입니다.
하지만 그런것 따위 안중에도 없는 카이토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만 가고 디케이드는 23화로 흘러갑니다.
아 이야기하는것을 깜박했는데 오프닝이 바뀌더라구요. 네거의 세계 전에는 1절 파트였는데 이후부터는 2절 파트가 나옵니다. 영상은 크게 바뀐 부분이 없지만 자잘하게 연출이 추가된 부분이 있더군요. 라이더 중에서는 종종 중반이 지나면 완전히 새로운 오프닝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 장면이 잘려나갈까 걱정했습니다만 다행히 그럴 일은 없었습니다. 하긴 새 오프닝을 찍을 예산이 적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장면은 정말 명작입니다. 갓 뽑은 가래떡처럼 말랑하고 따끈할 것만 같은 츠카사의 두 다리를 보게 되면 아직 이 이야기의 나머지 23분을 보지도 않았는데도 마음속이 충만해지고 포만감이 와서 밥을 안 먹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츠카사와 카이토간의 관계가 한 번 전환점을 가진다는 점에 있어서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근원, 자신의 내면에 가장 가까운 것에 다가설 수록 더 많은 것을 내보이기 마련입니다. 한 사람은 성장하면서 그가 살아온 사회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니 이 작은 세계는 카이토 다이키라는 사람을 -그가 방랑해온 기간이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가 되었을 겁니다. 마치 우리가 외국에 나가 살더라도 모국의 문화와 취향과 그 사회속에서 길들여진 사회성을 버리기 어려운 것처럼, 카이토 역시 그의 가장 밑바닥에 그가 이 작고 폐쇄된 사회에서 몸에 익혀온 모습들의 잔여가 남아 있겠죠. 그러니 그로서는 츠카사가 이 세계에 오는 것 자체가 영 달갑지 않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태껏 그는 츠카사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훼방 놓기를 좋아하는 작은 갈색 쥐냥이였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역전되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생판 남에게 다 보여주는 꼴인데 카이토가 그러고 싶을까요? 언제나 유유자적 괴도라이프를 꿈꾸는 그는 츠카사 못지않게 자의식이 대단히 높은 친구란 말이죠. 그러기에 그는 동정도 원하지 않고 남의 손도 빌리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카이토의 과거가 밝혀지고, 이 장면까지 와서야 저는 그가 왜 그렇게 보물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조금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디엔드의 세계는 얼핏 보면 형과 동생의 이야기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어두운 트라우마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거세당한 듯한 묘한 얼굴의 형제를 마주하는 순간 카이토는 거기서 자신의 방향성을 잘못 잡은 신념으로 추락시켜버린 수많은 이들을 대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모두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강제 도덕책 세계에 살지 않더라도 인간의 양심이 있는 한 그것은 엄청난 죄책감의 무게가 되어 자신을 짓누를 테죠. 하물며 자신이 수없는 이들에게 저지르고만 짓이 자신의 가장 가까운 혈육인 형의 얼굴이 되어 돌아 온다면, 카이토에게는 형과 마주 보는것만도 아주 큰 용기를 내야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츠카사가 있었기에 그가 형과 마주할 힘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죽어도 이 인간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카이토를 떠올리니 조금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결국 카이토도 자기가 우위에 있는 것처럼 여유로운 태도를 보여왔지만 결국 그 하늘같이 높은 자의식의 껍데기 안에 아주 작고 약한 본질은 감춰두고 있는 것입니다. 복어나 목도리 도마뱀들은 자신을 더욱 부풀려서 대단하게 보이게 하려고 합니다. 그것처럼 카이토의 대담한 몸짓들도 자신의 불안정하고 연약한 성질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것입니다.
이 화면에서는 다양한 굵기의 직선들이 레이아웃을 이루고 있습니다만 가장 얇고 스타일리시한 직선을 이루는 츠카사의 양 다리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한번 언급은 하고 지나가야겠습니다.
유스케도 나츠미도 혼돈속에 빠져들었지만 홀로 사유의 바다를 노니며 생각하는 츠카사의 모습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처럼 아름답습니다. 이번 에피에서는 특히 츠카사가 앉아있는 모습을 다양하게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디엔드의 세계 에피에서 이 장면을 두번째로 좋아하는데요 두번째로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첫번째로 좋아하는 장면이 따로 있기 때문이므로 그 장면 이야기는 뒤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츠카사가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그냥 개인적인 느낌입니다만 이전까지의 세계에서는 그래야 하니까 내뱉었던 말들이 여기서는 츠카사의 진심에서 나온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세계에 가서든 유유자적하고 뭐든지 대충 하는 것처럼 보이는 초 마이웨이 페이스 츠카사이지만 그래도 이전 에피들을 차분히 돌아보면 그가 꽤나 성실하게 세계의 룰과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그리고 각 이야기의 메인캐릭터에 맞추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연극속에 들어와 있다는 걸 잘 아는 배우의 움직임이지요. 하지만 디엔드의 세계에서는 얼핏 보면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약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츠카사가 부여받은 역할은 영업사원이지만 그것은 어떤 다른 단서와도 연결되지 않고 그저 카이토의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줄 뿐입니다. 그리고 딱히 그 활동이 카이토가 해야하는 일과 연결되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어쩌면 약간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츠카사는 이곳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츠카사는 디엔드의 세계에서 한번도 사진을 찍질 않았는데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면 츠카사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케이드 에피 가이드에도 나오는 내용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츠카사는 세계로부터 계속해서 거절당함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사진이라는 프레임 안에 남기려고 하는 친구입니다. 사진은 결국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가 세계의 여러가지 요소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진을 찍는 행위는 역으로 존재에 대한 계속된 증명과 재확인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에 맺히는 상은 고정되어 그 피사체가 존재했음을 증명합니다. 일종의 객관성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사진에 찍히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기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는 거죠. 인간의 시각이란 제법 주관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멀쩡하다고 인식하는 순간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거든요. 이런 부분을 고려한다면 츠카사가 사진기를 들여다보는 행위는 자기 스스로 세계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보는 세계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내가 눈으로 보는 세계, 그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그는 계속 사진을 찍음으로서 세계의 명확성과 존재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거겠죠. 그리고 그는 존재 기반이 불안정한 사람이니까요. 그의 눈으로 보는 세계는 명확해 보여도 실제로 사진을 찍어보면 죄다 이상하게 변형되어 나옵니다. 그것은 결국 지금 츠카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진짜 모습이 그러하다는 증명인 것입니다. 그가 있는 세계가 진짜 세계가 아닌 일종의 연극 무대라는 것을 계속해서 일깨우는 하나의 행위로 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츠카사가 가지고 있는 결핍과 그로 인한 무의식적 불안감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츠카사는 카이토가 자신과 같은 결핍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꿰뚫어 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카이토는 한 때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배신당함으로 그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념은 그 사람을 구성하는 가장 큰 세계관 중의 하나입니다. 그것이 부서진 순간, 카이토는 자신이라는 세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에 확신도 없고 자신에게서 더이상 어떤 가치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대신 가치있는 것을 외부에서 훔침으로써 자신의 비어버린 세계를 채우려고 한 것입니다. 카이토가 잃어버린 것은 한때 자신이 가졌던 세계관-내적인-이었고, 츠카사가 잃어버린 것은 자신의 존재기반이 되는 세계관-외적인-이라고 보면 결국 두 사람은 형태는 다르지만 똑같이 텅 비어있는 존재입니다. 더이상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린 존재.
그러나 카이토에게는 자신을 구성해왔던 세계가 있습니다. 그가 더이상 자신을 잃었어도, 카이토라는 존재를 만들어온 카이토의 세계는 여기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츠카사는 알고 있을 겁니다. 자신이 그의 세계를 찍는다는 행위 그 자체는 결국 그가 살아온 순간들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아무리 괴롭다하더라도 카이토는 자신의 과거를 마주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츠카사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사진기-렌즈-라는 보호막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눈으로 똑바로 카이토와 카이토 다이키의 세계를 바라봐 준 것입니다.
그렇기에 츠카사가 카이토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을 믿겠다고.
물론 그냥 귀찮은 도둑라이더네 세계 찍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구요. 츠카사는 거의 매번 딱 붙는 바지를 평상복으로 입어주는데 정말 어떤 코디가 생각해낸 아이디어인지 제가 디케이드 제작진에 대한 수많은 흉흉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설정만큼은 대대손손 찬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안그래도 인세를 초월해 열반의 경지에 이르른 궁극의 다리인데 그게 더 잘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에서 이미 그분은 극락행 하이패스티켓을 끊으셨을 겁니다.
그리고 바로 이 신이 제가 디엔드의 세계에서 가장 사랑하는 3초가량의 다리 워킹 신입니다. 클로즈업에서 멀어지는 구도로 츠카사의 하반신만 절묘하게 잡아 감동적이기까지한데요 구두굽부터 강조해서 엑스자로 교차하는 다리선의 다이나믹한 율동감과 에이치라인으로 떨어지는 단정한 핏까지 정과 동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완벽한 장면입니다.
안그래도 혼돈한 디자인인데 연출까지 게슈탈트붕괴를 일으키는 혼란의 연출
카이토 다이키는 강한 사람이지만 결국 어느 정도는 그런 사람인 척 해온 것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으로 그가 그렇게 비어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안에 보물에 대한 애착을 보통 사람 이상으로 욱여넣을 수 있었울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채워넣은 보물들이 주는 자신감으로도 카이토 다이키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강하게 만들어 줄 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결국 넘지못한 벽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츠카사의 노력이 통했던 것일지 카이토 역시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츠카사에게 있어 카이토의 이미지도 그저 귀찮은 도둑 라이더에서 변화한 것 같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있을 세계를 찾아 헤매왔습니다. 히카리 사진관의 친구들이 그에게 많은 의지가 되어주긴 했지만 사실 그들의 입장과 츠카사의 입장은 완전히 같지는 않거든요. 나츠미도 유스케도 자신들이 돌아갈 세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따뜻하고 다정해서 나츠미와 유스케의 세계관을 단단하게 떠받들어주죠. 그건 츠카사에게 마치 다같이 장기해외여행을 왔는데 나만 백수고 나머지 친구들은 건실한 직장이 있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츠카사는 이곳에 와서 카이토에게서 자신과 동류의 결핍감을 발견하고 일종의 아주 어렴풋한 안도감을 느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츠카사는 이런 장면에서 언제나 커피에 설탕을 넣고 있군요. 달콤한 다리만큼 달콤한것을 좋아하는 츠카사씨. 다음 세계는 무려 신켄쟈의 세계입니다. 여태껏 라이더들의 파괴자라는 닉을 달고 살아온 츠카사였으니 이번엔 아예 그 닉이 소용없는 곳에서 무언가 벌어지려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디엔드의 세계 내내 뇌리에서 떨어지지 않는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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