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사정으로 헤이세이 파이널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어찌나 참담한 일인지요. 그래서 최근 오즈도 시작했는데 그렇게 급하게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블레이드도 이제 40화를 넘겼습니다. 서사로서 거의 마지막 장에 접어든 지금, 모든 캐릭터가 자신의 이야기나 관계를 하나씩 매듭짓고 마무리하고 있지요. 이번 블레이드 41, 42화는 무츠키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에피소드입니다. 그동안 저는 무츠키에 대해서 어느정도 이해가 어려운 캐릭터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흔히 있는 사춘기 학생 캐릭터 정도라고 생각해왔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에피소드를 보고서 무츠키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네요. 일단 가보겠습니다. 블레이드 41화입니다.
이하의 글은 언제나 말씀드리듯이 가면라이더 블레이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해당 작품을 보신 분만 읽어주세요.
블레이드 41화 입니다. 틀자마자 겁나 익숙한 화면이 저를 반기는데요
동아시아 3국이 공통적으로 오랜 시간 사랑해온 그 작품을 소재로 국내에서 만든 특촬이 있었습니다. 근래에 갑작스럽게 유명세를 타고 트위터에 퍼져나갔던 작품인데요 그 작품 1화를 틀면 아주 익숙한 풍경이 보입니다. 바로 저 장면이죠. 그렇군요, 그 작품을 제작할 때 가면라이더며 전대 등 다양한 작품들을 참고했다고 하더니 1화의 그 당황스러운 단체전투신은 이 장면을 오마주했던 것입니다. 저는 시작부터 낯선 익숙함을 느꼈습니다.
모두가 숭상하는 매작과처럼 생긴 돌판은 현재 인간들에게 잡혀와 갖은 굴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정말 트라이얼 B에서 바로 D로 건너뛰었는데 대체 C는 어디간겁니까 타치바나씨의 재미있는 카테고리 8같은건가요? 보드는 대체 저 매작과를가지고 뭘 하려는 건지 점점 궁금해집니다.
타치바나씨는 너무 사람이 좋습니다. 아무리 자본가와 기업을 의심하는 시민의식이 약한 사람이라도 이미 보드의 수하에게 세번 정도는 배신당했는데요. 이쯤이면 한번이라도 보드의 모두가 나를 속이고 있는거라면? 보드가 나의 뇌에 전기자극을 가하고 있는 거라면? 하면서 의심을 하는 게 정상 아닐까 싶습니다. 타치바나씨는 1화의 그 무시무시한 통찰력을 보여준 이후로 거짓말같이 의심능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타치바나씨 그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예뻐지고 있는 하지메씨입니다. 점점 진지해지고 있는 전개에 한 떨기 빛을 내려주시는 블레이드의 최고 미인입니다.
무츠키는 그저 도망칠 뿐입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민폐를 끼치는데요 그중 가장 큰 피해자가 노조미입니다. 무츠키는 노조미같은 애가 자기 옆에 있으면 그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못 볼 꼴 다보고도 계속해서 그를 되돌리려고 노력하는 친구인데 나중에 정신차리면 무츠키는 노조미한테 연금이라도 줘야 합니다.
무츠키는 정말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적극적으로 왕따시키고 있는데요.. 이쯤 되면 그의 발악을 지켜보는 것이 안타까워지기까지 합니다. 그는 정말 필사적으로 주변의 손길을 뿌리치고 있다는 것을 이 장면에서 느꼈습니다. 그는 정말로 간절히 자신을 강한 단독자로 만들어 줄 힘을 원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괴물이라고 암시하면서까지요. 하지만 그게 정말로 무츠키의 길일까요?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껍질을 단단히 하면 할수록 그의 무른 속마음은 더 물러져 가는 것 같습니다.
역시 자본가나 부르주아들은 믿어서는 안될 사람들입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일어나라
그리고 저 이 안경남이 매우 맘에 드는데 얼마 안가서 잘못될 것 같아서 불안합니다.
그러나 저의 우려를 멋지게 불식시키신 멋진 안경남. 몇 화는 더 나오실 것 같아 안심입니다. 그나저나 이 배틀 파이트의 진실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것 같지만 이거 정말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술마신 잔을 두고 도시를 부수어가며 싸웠더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받아먹는 상황이랑 똑같습니다. 원래대로라면 1만년에 한번 일어나야 하는 천하제일 언데드 대회...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늘 큰 사고를 부르고 자연의 섭리를 방해합니다. 이 배틀 파이트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초반에 등장했다가 저에게 많은 혼란을 주고 사라진 이사카씨는 정말 똑똑한 언데드였다는 결론이 납니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언데드를 봉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 전용의 최강의 라이더를 만들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많이 알고 있었고 또 남달랐기 때문에 형장의 이슬로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지요 하지만 그의 놀라운 전략은 저의 마음속에서 고이고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남들이 무츠키에게 빛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무츠키에게 있어서 자신의 약함을 증폭시키는 요소입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자신이 보기에 부끄럽고 민망하며 약한 부분들을 혐오하는 성질이 남아 있고, 그에게 융화된 언데드는 그 지점을 이용하여 무츠키를 자극하고 있는 거겠죠. 무츠키는 그래서 계속 갈등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필사적으로 거부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강한 것이 전부일까 저는 이 지점에서 조금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사이다같이 시원한 한방이 있었지요.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갈 정도로 멋진 샷이었습니다.
이 익숙한 장면은 오프닝이 아닙니까? 역시 사기오프닝이었네요 앞에서 열심히 손 맞대고 있으면 뭐합니까 결국 뒤지게 싸울거면서
이 모든 사건의 흑막으로 보이는 분은 라이더들이 자멸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블레이드 42화로 넘어갑니다.
매작과처럼 생긴 돌판이 딱히 신비롭게 보이지 않아서 많이 곤란합니다. 모든 원흉인 텐노지 이사장이 아무리 열심히 진지하게 말해도 매작과처럼 생긴 돌판이 하나도 신비롭게 보이지 않아서 꼭 소품 세워놓고 말하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종류의 악당들이 흔히 바라곤 하는 버킷 리스트 제 1번 불로불사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요.
코타로가 텐노지 이사장이 수상하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뒷조사에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지 않기를 빌어봅니다.
이 싸움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카테고리 퀸 씨의 마음에 동요가 입니다.
초반에 노조미 보고 무츠키의 변화를 얘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된다고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모습의 무츠키가 되던 받아들이겠다고 할 줄은 몰랐습니다. 무츠키가 사라지고 나서 계속 찾아다닌 걸 보면 보통 좋아하는 것이 아닌데 무츠키는 정말 노조미에게 잘해줘야합니다. 노조미의 강인함에 놀람과 동시에 타치바나씨의 한결같음에 탄복한 장면입니다. 타치바나씨는 정말로 인간에게만 상냥하군요.
타치바나씨가 언데드를 용인하는 것은 그가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뿐입니다. 그가 하지메를 끝까지 신뢰하지 못했던 것도 타치바나씨에게는 하지메가 언데드이자 조커라는 개념이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가 잔인해질 수 없는 것은 타치바나씨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언데드라 할지라도 인간성을 내비치는 순간에 물러지며, 그 인간성이 사라졌다고 판단했을 때는 다시 상처입고 적대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여기 그 반대의 예시가 있습니다. 인간에 언데드가 씌여 제령이 필요한 무츠키.
날뛰는 그를 막아서는 것은 카테고리 퀸입니다. 그녀는 정정당당한 룰에 따라 배틀 파이트에서 살아남고, 자신과 동족들을 번영하게 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배틀 파이트가 정상적이지 않으며, 아무리 싸워도 자신이 원하는 명예로운 결과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절망했고, 좌절했으며 분노했습니다. 그 모습은 노조미와의 대화에서도, 무츠키와의 대화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는 명예로운 일이 무엇인가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라이더들에게 힘을 실어서, 그들이 이 배틀 파이트를 올바르게 종결시키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무츠키를 막아섭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기술과 요행에 앞서 자신의 올바른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남겨 주었습니다.
카테고리 퀸이 봉인되고, 무츠키는 심상세계에서 시마씨를 만납니다.
이 장면은 42화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고,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장면입니다. 무츠키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싫어했고 그 때문에 악에게 손을 뻗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무츠키가 왜 라이더가 되었을까, 그는 어떤 캐릭터일까 블레이드를 보면서 줄곧 궁금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젊은 고등학생 라이더일 수도 있지만, 이 장면을 보고 저는 무츠키가 누구보다도 가장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을 닮아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켄자키나 타치바나씨나 하지메나 다들 큰 힘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강인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들은 영웅이나 주인공이 되기에 적합하고 그들의 고민을 가지지만 사실 일반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우연히 주어진 라이더의 힘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도 몰라 허우적거립니다. 이 작품은 그런 평범한 사람들에게 무츠키를 통해서 혼자서 강해지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의지하지 않고 싶어하고, 강한 힘을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자신의 약한 모습을 넘어서서 멋지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무츠키도 그렇기 때문에 라이더의 힘이 자신을 강하게 해줄거라고 생각해 주변의 목소리를 거부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혼자 서려고 하면 할 수록 그는 흔들렸고 갈피를 잡지 못했고 이윽고 주변에 계속해서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주변에 의지하지 않아도 강한 그런 영웅의 모습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힘을 감당하는 부분에서부터 이미 실패 투성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블레이드는 그 약함도 인간의 일부라고 말해줍니다. 약하기 때문에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비록 그 때문에 쓰러지고 넘어지고 주변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우리에겐 힘을 더해줄 또 다른 이들이 있기에 강한 어둠에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싸움의 연출이 좋았습니다. 싸우고 있는 것은 무츠키이지만, 무츠키 안에 있는 시마씨나, 카테고리 퀸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함께 무츠키를 위해서 힘을 모아 주었을 때, 다른 이들의 힘을 합쳐 거미 언데드의 사악한 의지가 담겨 있는 라이더 시스템을 올바르게 제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서야 비로소 무츠키는 자신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게 되었고,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연약한 부분까지 끌어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켄자키나 타치바나보다 무츠키처럼 살아갑니다. 자신의 어떤 모습은 싫어하고 거부하면서 그 곤란함을 뛰어넘을 힘을, 벨트의 힘 같은 것들을 원합니다. 그래서 누구도 넘보지 못할 위치에 서려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 인간으로서 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내게 주어질지도 알 수 없는 무형의 기회에 의지하기보다는 내 주변에 있는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과 함께 자신의 벽을 넘어서는 일일 것입니다.